[아침을 열며] 사랑하는 딸이 농부의 아내가 된다면

입력
2020.05.29 04:30
©게티이미지뱅크

“농업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필자는 15년 전, 강남의 백화점 앞에서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위와 같은 질문에 모두가 “당연하다”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어느 분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말하며 농업은 더 발전되어야 할 중요한 산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뒤이어 “사랑하는 딸이 농부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하면 어떠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대답을 망설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9 농업ㆍ농촌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경제에서 농업이 앞으로 중요하다는 인식 비율은 7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은퇴 후 귀농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의 비율은 34.6%, 농업인의 직업 만족도의 비율은 23.3%로 두 경우 모두 6년 전보다 1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그 이유는 농부가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청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과 전문성을 활용하여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그 분야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가슴을 뛰게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농부가 매력적인 직업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꿈과 도전, 실패와 성공이 어우러진 존경받는 ‘스타 농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필자는 2007년에 멋진 여성 농업 CEO를 꿈꾸는 최연희씨를 만났다. 그녀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고단한 삶을 보며 자신은 농부에게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랐다. 사춘기 때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옆집 친구의 아버지가 몹시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취업을 하고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다가 운명의 남자를 만났다. 그는 충북 진천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그녀의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남자가 그 사람뿐이냐. 엄마 인생 보고도 그러냐. 지금은 어려서 모르겠지만 농사로는 돈도 못 벌고 자식 가르치기도 힘들다. 남는 건 허리디스크와 닳은 연골뿐이다”라며 눈물로 말리셨다. 그녀도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사랑의 힘에 이끌려 24세에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 신랑과 비닐하우스에서 단둘이 수박으로 시작한 농사는 단호박, 메론 등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1차 산업의 농업을 6차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녀의 바람은 아이가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꿈을 꾸는 그녀는 지금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렇듯 농업을 통해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한국의 작은 규모와 척박한 환경 때문에 많은 이들이 습관처럼 한국농업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한국농업을 위기로만 바라보는 우리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네덜란드는 국가 면적이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로 작다. 게다가 일조량이 부족하고 비가 많이 내려, 원예작물 생산에 불리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세계 2위 농식품 수출국으로, 전체 수출에서 농산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16%나 된다. 또한 자국 백만장자 중 농업ㆍ수산업 종사자가 19%나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농업 개발에 힘쓰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다양한 4차 산업기술이 농업에 접목되어 농업혁신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이를 통해 작지만 강한 우리 농업의 발전 가능성과 경쟁력을 보고 귀농을 결심한 청년 농부들도 늘어나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도전정신과 아름다운 이야기가 한국농업을 발전시키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결국 사람이 답이고 꿈이 에너지다. 우리가 정말 농업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당당하게 장래 희망 칸에 ‘농부’를 적을 수 있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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