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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읽기] 땜질식 ‘신도시’는 그만… 구도심 재생과 연계해야 난개발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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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ㆍ일산 자족 신도시 건설해 주택시장 안정 목표 이뤄
교통지옥 구도심 쇠퇴 등 천문학적 사회적 비용 부작용도
4기ㆍ5기 신도시 수요 내다보고 도시재생과 공생할 정책 세워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거주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4> 신도시는 어떻게 개발되어야 하는가
새 것을 좋아하고 헌 것을 하찮게 여기는 풍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옛 정취가 묻어나는 허름한 골목이 힙플레이스로 거듭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구도심에 비해 신도시를, 구옥에 비해 신축을 선호한다. 구태와 구습, 구식에서 느껴지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래되었다는 것은 뒤떨어지고 불편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도시재생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는 지금도 많은 구도심은 매력적이기보다 불편하고 누추한 공간이다. 그렇다면 신도시는 우리 삶과 도시를 얼마나 바꾸었을까. 사라진 듯 했던 신도시가 다시 추진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 도시구조와 주택정책에 신도시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고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신도시는 부동산시장의 해열제
신도시라는 개념이 우리 삶에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분당과 일산을 비롯한 수도권 5개 신도시가 건설되면서부터다. 시기는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간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르는 과정에서 주택가격과 전세가가 급등하자 주택문제는 정권 차원의 의제가 되었다. ‘5공 청문회’ 등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위협받고 있던 노태우정부는 주택시장 불안까지 겹치며 지지율이 급락하자, 결국 1988년 ‘주택200만호 건설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1989년 등장한 것이 수도권 5개 신도시이다. 처음 계획은 기존 시가지에 연접하여 대규모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형태였다. 중동, 평촌, 산본 등 3개의 도시내신도시(Newtown in town)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집값을 잠재우기 부족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분당과 일산이라는 대규모 자족적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추가 발표한다.
결과적으로 1기 신도시는 주택시장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가장 오래된 시계열자료인 KB부동산의 매매가격지수를 보면 신도시효과가 나타나기 전인 1986년 1월부터 1990년 1월까지 서울의 주택매매가격지수는 26.1% 상승하였다. 신도시의 분양과 입주가 본격화된 1990년 1월부터 1994년 1월까지는 9.6% 상승에 그쳤다. 1994년 1월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영향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1998년 1월까지는 상승률이 2.2%에 불과했다. 이것이 모두 신도시의 효과라 보기는 어렵지만 신도시로 공급한 30만호가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경험은 위기 때마다 신도시 카드가 등장하는 배경이 됐다. 1998년 외환위기는 주택경기를 침체시켜 공급이 급격하게 감소했고, 그 결과 2001년 봄부터 주택시장이 다시 뜨거워졌다. 그러자 정부는 2001년 화성 동탄(동탄1신도시)을 시작으로 12개의 2기 신도시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후에도 2003년말까지 주택가격 상승은 이어졌지만, 동탄1신도시가 최초 주택분양을 한 2004년 이후부터 점차 공급효과가 나타나 주택시장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신도시에 대한 정부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진 것으로 보인다.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하겠다던 당초의 계획까지 접고, 다시금 3기 신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계획에 없던 계획도시, 신도시
문제는 신도시 개발 과정에 몇 가지 맹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신속한 주택공급만을 목표로 한 나머지 중장기적인 도시계획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신도시가 기존 구도시에 비해 기반시설을 잘 갖춘 계획도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광역적 차원으로 보면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신도시들의 지역별 분포만 봐도 장기적인 계획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1기 신도시는 개발제한구역을 넘어 서울 도심에서 20~25km권에 분포한다. 2기 신도시는 대체적으로 30~40km권에 분포한다. 그런데 3기 신도시는 갑자기 1기 신도시 안쪽인 15~20km권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도 오랜 세월 묶어 두었던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해가면서 말이다.
만약 중장기적인 계획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서울에서 가까운 곳부터 신도시로 개발하려 했을 것이고, 1기 신도시는 분당ㆍ일산이 아니라 위례(2기)ㆍ창릉(3기)이 선정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울로 통근하는 분당과 일산 주민은 훨씬 짧은 출퇴근을 해도 됐을 것이고, 막대한 광역교통구축비용과 혼잡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반시설 부족이라는 태생적 한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택공급 계획에 맞춰 부랴부랴 광역기반시설을 공급하느라 초창기 신도시 입주민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교통지옥’을 감내해야 했다. 분당의 예를 보자. 1991년 9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한 분당주민들은 버스노선이 턱없이 부족해 통근시간에는 정원의 두 배 가량인 80~100명이 버스에 타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광역교통망도 뒤늦게 준공되는 바람에 자가용 운전자들도 많은 시간을 길에서 허비해야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분당-수서고속도로(분당-장지)와 분당선전철(수서-오리)은 첫 입주 후 3년이 지난 1994년 9월에야 개통되었다.
이는 1990년대 난개발의 상징이었던 ‘나홀로 아파트’를 연상케 한다. 당시에 일부 주택업자들은 기존 도시에서 택지확보가 어렵게 되자 준농림지의 논 한가운데를 아파트지구로 변경하여 1개의 아파트 단지를 섬처럼 지었다. 그래서 ‘논두렁 아파트’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이런 아파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교나 도로, 공원과 같은 기반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 덜렁 아파트만 있다는 점이었다. 입주민들은 농로를 따라 출퇴근을 하고 아이들도 집에서 한참 떨어져있는 학교를 다녀야 했다. 개별적으로는 잘 계획된 신도시도 광역적으로 보면 ‘다도해’처럼 분포하고 있어 나홀로 아파트 난개발을 닮아있다.
◇ 숲을 보는 혜안이 필요할 때
이 같은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 앞으로 세워지는 신도시는 주택시장만 보지 말고 중장기적인 공간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하나의 벽돌이 단단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지은 집이 반드시 튼튼하지는 않다. 설계를 잘하고 정해진 순서에 맞추어 지어야 수백 년 가는 명품주택이 될 수 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개별 신도시들을 아무리 계획적으로 짓는다 해도 그들의 위치와 순서가 바르지 않다면 전체적인 도시구조는 불완전하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신도시의 난개발을 막으려면 장기적인 안목이 필수적이다. 우선 앞으로도 4기 5기 신도시의 수요가 있을 것이란 점을 대비해야 한다. 사실 정부는 2기 신도시를 추진하며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오판을 했다. 앞으로 도시재생에 집중할 것이라며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하려 했었다.
하지만 대도시 집중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신도시는 계속 필요할지도 모른다. 만약을 대비해 적절한 부지를 찾아 토지를 비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스웨덴 스톡홀롬시의 사례가 좋은 본보기다. 이 도시는 상당한 양의 시유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주택시장이 불안하면 이를 주택조합이나 주택건설업자에게 장기임대해주고 저렴주택을 공급하도록 한다. 수십 년 전에 확보한 것이므로 매입비용에 대한 부담은 없다. 매년 토지임대료를 받으므로 시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1기 신도시를 추진할 때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2기와 3기 신도시부지를 확보하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도시공간구조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시재생과 공생할 수 있는 신도시정책도 필요하다. 신도시 위주의 주택공급은 필연적으로 구도심의 쇠퇴를 가속화시킨다. 신시가지에 신축한 저렴한 주택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공간을 보지 못하고 주택문제를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로만 본다면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전체 광역도시권의 도시계획과 연계하여 구도심의 재생과 함께 연계할 수 있는 신도시 개발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테면 구도심은 보행 중심의 고밀 직주근접형 도시구조를 지향하고, 신도시는 광역대중교통 중심의 중저밀 주거단지를 공급하는 전략을 고려해볼 수 있다. 도심의 밀도를 높이고 공원이나 보행로 같은 친보행적 공공공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은 에너지 측면에서나 1~2인가구의 주택공급측면에서 효과적이다. 반면 어린아이를 키우는 다인가족에게 도심의 주거비는 부담스럽다. 그들은 신도시의 저렴하고 넓은 주택과 잘 갖추어진 학교 및 문화시설을 보다 선호할 수 있다. 도심 직장으로 편리하고 쾌적한 통근만 보장된다면 말이다.
우리는 그 동안 신도시라는 ‘해열제’를 먹고 주택시장에서 발생한 ‘고열’을 치료해왔다. 30여년간 주택공급의 보루였던 신도시는 값싸고 질 좋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여 국민주거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도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주택공급에만 집중하다 보니 낭비적인 장거리통근과 구도심 쇠퇴 등 예기치 않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지난 신도시개발의 아픈 교훈을 되새겨 앞으로의 신도시는 난개발이 되지 않도록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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