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모 버그의 은밀한, 기이한 생애(5.29)

입력
2020.05.29 04:30
기이한 메이저리거 겸 스파이 모 버그가 1972년 오늘 별세했다. 게티이미지

메이저리거 선수 겸 코치로 일하다 미 중앙정보국(CIA) 전신인 전략사무국(OSS) 첩보원 겸 공작원으로 활약한 모 버그(Moe Berg, 1902.3.2~ 1972.5.29)의 생애는 많은 부분이 베일 뒤에 있다. 알려진 삶도 극적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공백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여러 편의 책과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난해에도 작가 니콜라스 다비도프의 책을 각색한 영화 ‘The Catcher Was a Spy’가 개봉됐고, 다큐멘터리 영화 ‘The Spy Behind Home Plate’가 제작됐다.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서 태어난 그는 7세 무렵 교회 야구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유대인 입단이 안돼 이름을 바꿨다는 설이 있다. 그의 출생 증명서에는 본명 ‘Morris’가 아닌 ‘Moses’로 기록돼 있고, 생일도 다르다. 프린스턴대 언어학과를 우등 졸업하며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해 7개 언어를 익혔고,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12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유격수였던 그는 대학 대항전 때 상대 팀 주자가 못 알아듣게 라틴어로 2루수와 소통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23년 연봉 5,000달러로 브루클린 로빈스에 입단했다. 26년 보스턴 화이트삭스 시절 스프링 캠프와 시즌 첫 두 달 경기를 결장, 휴학 중이던 컬럼비아대 로스쿨 수업을 들었고, 30년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보스턴 레드삭스를 거치며 39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은 2할 4푼 3리였고, 홈런은 단 6개였다. 레드삭스의 마지막 포지션은 후보 포수였고, 41년까지 코치로 일했다. 39년 2월 한 라디오 퀴즈쇼에 출전해 근사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진주만 공습 직후인 41년부터 그는 미주연락사무소(OIAA)와 OSS를 위해 일했다. 적국 이탈리아의 공기역학 전문가를 찾아내는 임무부터, 독일 이론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에게서 나치 핵 개발 진척도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아 그를 만나기도 했다. 45년 대통령 자유메달을 그는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거부했고, 회고록과 자서전 제안도 모조리 외면했다. 그는 야구장과 도서관을 오가며 여생을 보내다 72년 숨졌다. 그는 독신의 바람둥이로 알려졌지만, 작년 영화에서 암시한 것처럼 양성애자라는 설도 있다. 최윤필 선임기자

기억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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