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5.27)

입력
2020.05.27 04:30
대서양을 왕복한 뒤 벨기에에 입항한 2차대전 직전 유대인 난민선 '세인트루이스 호'의 승객들. 게티 이미지.

함부르크-아메리칸 해운 소속 대서양 횡단 여객선 ‘세인트루이스(MS St. Louis)호’가 1939년 5월 13일 독일 함부르크 항을 출항했다. 배에는 승객 937명과 선원 231명이 탑승했다. 승객 대부분은 유대인이었다. 나치 돌격대와 히틀러 청년단이 주도한 소위 ‘수정의 밤(Kristall Nacht)’이 지난 지 약 6개월 만이었다. 1938년 11월 9, 10일의 ‘수정의 밤’은 나치 단원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독일 합병 지역 유대인 가게와 집들을 조직적으로 약탈 파괴한 사건으로, 유대인 박해의 신호탄이었다. 세인트루이스 호는 사실상 유대인 난민선이었다.

승객 대부분은 경유지인 쿠바를 거쳐 미국과 캐나다로 이민을 희망한 이들이었다. 5월 27일 쿠바 아바나 외항에 도착한 배는 하지만, 입항을 거부당했다. 당시 쿠바 대통령(Federico Laredo Bru)은 포고령을 통해 세인트루이스호 승객들에게 발급한 입항 허가서의 효력을 취소했다. 대공황 여파로 줄어든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실은 여론 때문이었다. 현지 나치 독일 주재원들은 다양한 경로로 배 승객 대부분이 범죄자거나 공산주의자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대규모 반유대인 집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미국의 유대인 단체가 쿠바 정부와 협상을 벌였지만 소용 없었다. 6월 2일 배는 플로리다로 향했지만, 미국 정부 역시 해안경비대까지 동원해 입항을 막았다. 이민 쿼터가 다 찼다는 게 이유였다. 캐나다도 입항을 거부했다. 2차대전 전 반유대인 정서가 그러했다.

배에 실었던 물과 식량은 거의 떨어지다시피 했다. 부득이 배는 다시 유럽으로 회항, 6월 17일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en, 앤트워프)항에 입항,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에 분산 수용됐다. 2개월여 뒤 2차 대전이 터졌다. 훗날 확인된 바 세인트루이스호 승객 중 255명은 나치에 의해 주로 멸절 수용소에서 숨졌다.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랍 일부국 시민에 대한 미국 이민 중단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3769) 발표 직후 ‘세인트루이스 호의 비극’이 SNS 등을 통해 환기됐고,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39년의 정부 결정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기억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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