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본다, 과학] 100년 전 ‘2차 유행’ 이어졌던 스페인 독감… 코로나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20.05.08 04:30
19면

 ※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4>지나 콜라타 ‘독감’ 

1918년 전 세계를 휩쓸며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낸 스페인독감. 2차 유행을 방심했던 인간의 안일함이 피해를 더 키웠다. 산처럼 제공
1918년 전 세계를 휩쓸며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낸 스페인독감. 2차 유행을 방심했던 인간의 안일함이 피해를 더 키웠다. 산처럼 제공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말을 되뇐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국외로 시선을 돌려보면, 이웃 나라 일본부터 시작해서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여 있는 미국, 유럽까지 전 세계가 고군분투 중이다. 당장 미국에서 언제쯤 바이러스 유행이 끝날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다.

북반구의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보건 의료 역량이 취약한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는 도대체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나 확산해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진단 자체가 어려우니 병원이나 집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환자 가운데 누가 바이러스 감염자인지도 오리무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 전문가 여럿이 이구동성으로 “2차 유행”을 경고하고 있다. 사실 가을, 겨울의 2차 유행을 말하는 일조차 성급하긴 하다. 가을까지 지금 진행 중인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 유행이 잡힐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 번씩 고생한 북반구 여러 나라를 바이러스가 정말로 한 번 더 공격할까.

이런 걱정을 하는 전문가가 이구동성으로 떠올리는 일이 딱 100년 전에 세계를 덮쳤던 1918년 ‘스페인 독감’이다. 지나 콜라타가 1999년 펴낸 ‘독감(Flu)’은 바로 이 스페인 독감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대중적으로 공론화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 끝나자마자 출간되었다. 이 책이 묘사한 100년 전의 상황을 보자.

스페인 독감은 이름과는 달리 1918년 봄에 ‘아마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유럽을 포함해서 북반구 여러 나라를 독감이 덮쳤다. 전쟁 때문에 정신도 없었고 보도도 통제했던 다른 나라와 달리 스페인 언론만이 이 심상치 않은 독감의 세계적 유행에 주목했다. 그래서 억울하게 이 독감에는 ‘시카고’나 ‘캔자스’ 대신 ‘스페인’이 붙었다.

봄철 내내 전쟁터의 군인을 포함한 북반구 여기저기를 들쑤셨던 독감은 여름이 되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러다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다시 미국을 비롯한 북반구 곳곳에서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차 유행이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가을에 다시 유행한 독감은 봄철과 아예 다른 질병처럼 보였다. 봄철처럼 전파력이 강했을 뿐만 아니라 살상력도 강해졌다.


 독감 

 지나 콜라타 지음ㆍ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ㆍ438쪽ㆍ1만9,500원 

결국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이 독감으로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에서 1억 명이 사망했다. ‘독감’에서 콜라타는 보수적으로 ‘2,000만 명’을 언급하고 있으나, 스페인 독감에 대한 연구 성과가 쌓일수록 그 피해 규모는 늘어나고 있다. 당시 세계 인구 약 18억 명 가운데 최대 5% 정도가 이 독감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독감’은 앞부분에서 스페인 독감을 소설처럼 재구성하고 나서, 중반부터는 이 바이러스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학자 제프리 토벤버거 등의 활약상을 그린다. 책이 나오고 나서, 이들의 활약으로 100년 전 살인자의 정체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종(H1N1)으로 밝혀졌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와 같은 계열이다.

‘독감’으로 100년 전의 상황을 되짚는다 해서, 코로나19의 유행이 언제쯤 끝날지 또 진짜 2차 유행이 덮칠지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나 콜라타의 ‘독감’은 전염병의 원인(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을 재빠르게 알아낸 것을 빼놓고는, 바이러스 습격에 대항하는 인류의 모습이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진실을 씁쓸하게 전한다.

더구나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습격에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불편한 깨달음도 준다. ‘뉴욕타임스’ 의학 담당 저널리스트 지나 콜라타가 ‘독감’을 펴냈을 때의 나이는 만 51세. 1948년생 그는 올해 만 72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장을 누비면서 기사를 쓴다. 그가 개인 소셜 미디어에 올린 4월 20일자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 속에서, 심장 및 뇌졸중 환자가 사라졌다(Amid the Coronavirus Crisis, Heart and Stroke Patients Go Missing).”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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