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눈물의 비디오를 보라

입력
2020.04.29 18:00
22면
구독

무차별적인 코로나19 공격과 달리

후폭풍은 저소득ㆍ자영업에 직격탄

정치권, 초당적 대응 능력 보여야

휴일인 지난 19일 서울 명동거리 한 상점에 임시휴무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휴일인 지난 19일 서울 명동거리 한 상점에 임시휴무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자본주의 사회가 묘한 것은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떼돈을 버는 이들이 생기는 데 있는 듯하다. 탁월한 ‘촉’과 모험적 투기가 결합된 드문 경우이겠지만 말이다. 이런 사례를 다룬 영화가 2016년 1월 개봉됐던 ‘빅쇼트’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던 트레이더들의 이야기다. 미국 주택시장 버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를 점친 이들이 거금을 투자하고, 장기간 버틴 끝에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더불어 큰돈을 만지는 내용이다. 코로나19 쇼크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요즘 이 영화 한 대목이 유튜브에서 유행이다. “우리가 옳다면 사람들이 집을 잃고, 직업을 잃고, 은퇴 자금과 연금을 잃게 될 것이기에, 우리가 춤출 일은 아니다”는 대사는, 트레이더인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 분)가 성공을 예감하며 들뜬 동료들에게 정색하며 한 말이다.

그 시절 미국 서부 시애틀에서 연수했던 기자에게 도시 주변의 많은 단독주택 앞마당과 대문에 압류(Forecloser) 팻말이 걸려 있던 광경이 지금도 선명하다. 100년 이상 업력을 자랑하던 지역 기업은 금융 위기의 거센 폭풍에 문을 닫았다. 일에 전념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는 해고자들의 동영상은 태평양에 접한 퓨젯사운드의 아름다운 석양과 어우러져 처연했다.

세계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으면서도 정작 세금에 기대 연명했던 거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구제금융 과정에 서 도덕적 타락 등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시스템 상부의 타락이 초래한 위기가 사회 밑바닥까지 전이된 것이라 그 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로 이어진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요즘 코로나19가 부유한 나라나 가난한 나라, 부자나 빈자 가릴 것 없이 공격을 해대고 있지만, 코로나19 쇼크에 따른 경제 통계는 초현실적이면서도 너무나 차별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반면교사가 됐든, 그때 정부나 중앙은행의 극복 경험이 거인의 어깨가 됐든 코로나 경제 쇼크를 수습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조치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감하고 발 빠른 게 특징이다. 미국은 사상 최대의 긴급재정 투입과 대규모 양적 완화 조치로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의 신용 경색과 부도를 차단하면서 위기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성과는 제한적이다. 부실 셰일 기업의 파산 뉴스가 들리지만 대규모 긴급자금 투입으로 대기업이 넘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반면 지난 5주간 미국의 실직자는 2,600여만명이나 양산됐다. 폭증하는 감염 사태에 봉쇄 등 사회 마비가 장기간 지속돼 생산과 소비가 급감한 탓이다. 코로나19 이전 월 평균 실업수당 청구가 20여만건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상상을 넘어서는 충격파다. 더구나 그 대부분이 레스토랑 종업원, 아르바이트생 같은 저소득 근로자다. 1,000달러 안팎의 재난지원금과 실업수당을 받는다지만 생존의 위기, 가정의 위기를 불식시키지 못할 것이다.

코로나19 조기 진화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에 엮여 있는 우리 사정이 이보다 나을 건 없다. 지난달 일시 휴직자가 160만명이 발생했으며, 사업체 종사자가 2009년 고용 부문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고 한다. 더욱이 정규직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000명 감소한 반면, 임시일용직은 12만명이 줄었고, 매출 감소에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폭증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공격은 무차별적이지만 저소득 근로자와 자영업자가 후폭풍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작 단계라는 코로나19 경제 쇼크에 생존의 위협은 가중되는 상황이다. 우리 이상으로 당파 갈등이 심한 미국 여야가 경제 위기 대응에는 발 빠른 타협을 보여주는 마당이다. 갈 길이 먼데 고작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여야 갈등과 당정 불협화음을 낼 정도로 여유를 부릴 때인가 싶다. IMF 외환위기 때처럼 폐업 사연 등을 담은 눈물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수두룩하다고 한다. 눈여겨보길 바란다.

정진황 뉴스1부문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