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윤의 으라차차 동물환자] ‘친환경 비료’에 죽어가는 동물들

입력
2020.04.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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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박비료를 먹고 내원했던 ‘인도’는 천만다행으로 경과가 좋아져 퇴원했다.
유박비료를 먹고 내원했던 ‘인도’는 천만다행으로 경과가 좋아져 퇴원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세 살배기 진도견 진토가 쓰러져서 왔을 때 다들 깜짝 놀랐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피를 토하는 상태였다. 문진 결과 ‘친환경 퇴비’로 구매한 비료가 화근이었다. 비료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포대를 뜯어서 알갱이를 먹은 것 같다고 했다. 다음날 진토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 며칠 뒤엔 병원 근처 절에 사는 ‘인도’가 급히 내원했다. 진토와 같은 원인이었다. 비료 덩어리를 먹고 바로 토했는데도 서지 못하고 침을 흘려서 데리고 오셨다, 역시나 염증수치와 간수치는 치솟았고 위장관은 엉망이었다.

이 무서운 비료는 ‘유박(油粕)비료’라고 불린다. 깻묵, 즉 식물에서 기름을 짜낸 찌꺼기다. 비료의 주원료가 피마자(아주까리) 유박인 게 문제다. 피마자 껍질에는 리신(Ricin)이라는 독성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 리신의 독성은 청산가리의 수천 배에 달한다. 사람도 극소량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런 독성을 가진 비료가 사료알갱이처럼 생긴 데다 숙성시키지 않아서 깻묵의 고소한 냄새가 강하기 때문에 피해사례가 잦다. 고소한 냄새에 끌려서 먹게 되면 끔찍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강아지가 피마자 유박비료를 섭취하면 6시간 이내에 출혈성 구토와 출혈성 설사, 침흘림, 복통, 고열, 발작 등의 증상을 보인다. 씹지 않고 삼켰을 때보다 씹어서 소화했을 때 중독증상은 더 심각하다. 구토를 했더라도 잔여물이 남으면 위점막으로 독성물질이 흡수되어 중독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섭취 후 2시간 안에 위세척이 필요하다. 치사량을 섭취한 경우엔 위장관의 출혈성 괴사뿐 아니라 간, 신장, 비장 출혈로 섭취 후 2~3일 내에 사망한다. 리신 중독에는 해독제도 없다.

급증하는 피해로 농촌진흥청에서 피마자 유박비료의 리신 함유량을 제한했다. 하지만 함유량이 초과된 비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피마자 유박원료가 워낙 싼 탓에 포기 못하는 이유가 크다. 2017년부터는 포장지에 ‘개, 고양이가 섭취할 경우 폐사할 수 있다’는 붉은색 경고 문구를 넣도록 규정했지만 인터넷상의 몇 군데를 제외한 대부분은 제품 설명에 내용이 빠져 있다. 위험하다는 내용 대신 ‘친환경 유기농 퇴비’ 등의 문구만 강조된다. 독성물질을 담은 비료가 이른바 ‘친환경’ 비료로 오인되어 정원, 밭, 과수원, 화분 등에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진토’와 ‘인도’의 경우가 여기에 속은 사례다. 길에 사는 개, 고양이들이 뿌려둔 비료를 먹고 피해를 입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을까.

반려동물 관련 업종에서도 유박비료에 대한 위험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두 번이나 반려동물 놀이터에 뿌린 비료를 놀이터에 놀러 간 강아지가 먹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최근 인천에서는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공원 화단에 유박비료를 뿌리고 경고문을 걸어두지 않았다가 뒤늦게 현수막을 건 사례도 있었다.

개, 고양이뿐만 아닐 것이다. 야생동물의 피해도 클 텐데 단지 정확한 피해집계가 없을 뿐이다. 동물의 위험만이 아닐 수 있다. 가정에서 키우는 화분에 쓰였을 때는 유아의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 위험사례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원료의 다른 대체재를 고려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당장 원료를 바꾸기 어렵다면 제품 형태의 변경이 필요하다. 알갱이 형태가 아닌 액상형태로도 바꿔서 제조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인도는 천만다행으로 경과가 좋아 퇴원했다. 요즘은 병원에 오는 모든 보호자들에게 당분간은 산책 시 화단 근처에 냄새를 맡거나 입을 대지 않게 주의시켜 달라고 말한다. 유박비료를 섭취한 걸로 의심되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오라는 당부도 함께한다. 하지만 우리가 피해서 해결되기보다는 위험한 원료가 더 이상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 안타깝게 피해를 입고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명복을 빈다. 내년 봄은 더 이상 잔인하지 않기를 바라며.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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