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건강한 야생에서의 꽃선발

입력
2020.04.21 18:00
다양한 색으로 개량된 팬지. 사진 김정명

광화문 사진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튤립을 포함한 갖가지 꽃들을 주인공으로 그 뒤에 차례차례 잠시 쉬고 있는 듯 한적한 광장이, 의연한 광화문이, 그리고 흰 구름이 섞인, 맑디맑은 파란 하늘이 모두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곳엔 항상 감각 있게 작은 정원처럼 블록을 만들어 꽃을 심어 두는데, 사람과 자동차와 수많은 이슈가 사회적 거리 두기로 멀어진 지금 비로소 주인공이 되었다 싶었습니다. 지난 두세 달, 예측불허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꽃을 심으며 외롭고 두려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을 그 손길이 감사했습니다.

팬지화단. 사진 김정명

봄의 화단에 가장 흔히 심는 꽃은 아무래도 팬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흰색, 노란색, 자주색 세 가지 색깔을 기본으로 다양하게 배합되어 무늬가 만들어져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연보라색에서 주황색까지 색깔도 크기도 더욱 다양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팬지가 추위를 비롯한 여러 조건에 잘 견디는 편이고 재배 방법에 따라서 꽃이 겨울을 나기도, 여름까지 이어지기도 하여 가로 화단에서 가장 흔한 꽃이 되었습니다.

색색이 피어 있는 꽃들을 봄 햇살이 가득한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노라면 참 재미있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벨벳 같은 느낌을 주는 꽃잎들은 그 크기와 모양도 조금씩 다르고, 그 꽃잎마다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는 다양한 색들의 배합으로 만들어진 무늬들도 특별하여 마치 표정이 있는 듯 느껴집니다. 팬지(Pansy)는 ‘명상한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팡세(pensee)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다소 고개 숙인 여러 모습들이 번민하는 사람의 얼굴 같아서 였을까요! ‘턱수염이 있는 새끼고양이(bearded kitten)’라는 별칭,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듣노라면 다섯 장 꽃잎을 가진 동전 크기의 꽃 안에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는 듯합니다.

삼색제비꽃에서 개량된 팬지품종. 사진 양형호

꽃 하나에 어떻게 이런 다양함이 들어 있을까요? 야생 팬지라고 부르는 유럽 원산의 삼색제비꽃에서 시작합니다. 이 종의 변이 속에서 표현되는 여러 품종이 선발되었을 것이고, 거기에 제비꽃집 안(Viola) 삼색제비꽃 혈통에 속한 다른 종들이 조금씩 피를 섞여가며 새로운 모습의 품종들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물론 요즈음에는 방사선을 활용하여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일도 하지만요. 세 가지 색에서 출발한 작은 야생 팬지는 특별한 빛깔, 눈길을 끄는 크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취향, 겨울에도 견딜 수 있는 내한성, 용도에 따른 키로 키우고 싶은 마음, 돌발 병해충에 대한 저항 등 시대에 따라 여건에 따라, 선발의 기준들이 달리하며 긴 세월 동안 변해 왔습니다. 지속적인 변신으로 지금까지 팬지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계속 새로워지는 선발 기준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풍성한 유전자 풀이 야생에서 건강하게 유지되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주 치러진 선거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팬지 같은 꽃은 모습은 물론이고, 사과 같은 과실만도 큰 것. 단 것, 단단한 것, 빨리 익는 것 등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특징들이 변하듯 국민들이 원하는 인물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 다르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바뀌어 갈 것이며, 생명력이 가득한 야생의 자연이 중요하듯 나라를 이끌어 갈 훌륭한 인재의 풀도, 이를 선발하는 국민들의 생각의 풀도 폭넓고 건강하게 유지되고 발전되도록 함께 노력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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