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21대 국회에 바란다

입력
2020.04.15 18:00
수정
2020.04.15 18:4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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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로나 대응 모범 삼은 해외 각국

총선, 높은 투표율로 치른 데도 큰 관심

새 국회는 국제 기준에 부끄럽지 않아야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4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4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독일 내무부에서 메르켈 총리에게 제출한 코로나 대응 보고서가 있었다. ‘코로나19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이 보고서는 전문가 의견을 종합한 독일 내 코로나 확산 시나리오와 대응 방향을 담고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신종 코로나 대응을 잘 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보고서에서는 해외 사례가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보고서에 국가명으로는 발병 상황과 관련해 언급된 중국 이외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한국이다.

“한국에서는 최소한의 외출 제한과 효율적인 검사와 격리로 확산을 통제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의 데이터는 전염병 유행이 끝나고 모든 감염자들이 완치 또는 사망했을 때 계산 가능한 최종 치사율의 최저치로 봐야 할 것이다” “감염 가능성 있는 사람과 접촉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한국에서는 이를 검사 인력과 직접 접촉 없이 검사 희망자들의 검체 채취를 가능하게 한 드라이브 스루와 검사 부스로 해결했다”

해외 언론을 통해 수도 없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유럽 강국 독일 정부가 선진 국가의 바로미터라고 할 보건의료 부문에서 한국을 모범으로 삼았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물론 외신이나 외국 정부의 평가에 일희일비할 건 아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해외의 호평에 비해 우리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국내 언론의 평가는 인색했다. 정부 당국자가 이런 외신을 인용이라도 할라치면 야당과 한 목소리로 태평양 저 건너 대통령에게나 어울릴 “자화자찬에 빠졌다”는 독설을 쏟아 내는 것이 과연 객관적인지 의문이다.

한국에 대한 해외의 관심은 코로나 대응으로 그치지 않았다. 보건 위기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치러내는 역량 또한 주목 받았다. 코로나 확산 이후 전국 단위의 선거를 연기한 나라들이 40여개국에 이른다. 프랑스는 이미 지난달 지방선거를 미뤘고 러시아와 칠레는 이달 개헌 국민투표를 연기했다. 영국도 5월 초 지방선거를 1년 뒤로 미뤘고, 독일 집권 기독민주당은 새 대표를 뽑는 이달 전당대회를, 미국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7월 전당대회를 연기했다.

선거 연기는 적극적인 이동제한 조치 등 최대한의 봉쇄로 코로나19와 싸우는 나라들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감염 확산의 위험을 피한다는 보건 위생의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투표율 하락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선거 강행은 민주주의 훼손을 부를 수 있다. 우리도 사정이 같았다면 당연히 총선을 연기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비상사태를 선포하거나 아예 외출을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나라는 주요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 정도다. 소극적인 검사로 여전히 감염 실태가 베일에 가린 일본을 논외로 한다면, 자유를 강조하다 한 순간 통제사회로 돌변한 서구를 보더라도 ‘안전’이라는 시민 일반이 납득 가능한 목표 아래 적절한 수준의 빠른 통제를 실시한 한국의 대응이 시민의 자유를 덜 옥죄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차질 없게 하는 것은 물론 뜨거운 투표 참가라는 선순환을 낳았다.

이번 총선이 코로나에 묻힌 선거라고들 했다. 지역의 후보들, 각 정당의 공약들이 선명히 부각되지 못한 채 선거가 끝난 것은 아쉽다. 진통 끝에 만든 개혁 선거법이 비례 위성 정당의 등장으로 취지를 살리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하지만 정부와 시민이 이인삼각으로 코로나에 대응하며 차질 없이 선거를 치러 갖게 된 자신감은 다시 얻기 힘든 소득이다.

새로 출범할 21대 국회가 이런 자부심을 바탕으로 일해주기 바란다. 한국은 여전히 군사독재의 유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방의 작은 권위주의 국가가 아니다. 먼저 파이를 키우고 봐야 한다며 노동을 희생하고 성장하는 나라가 되어서도 안 된다. 코로나 대응에 쏠린 세계의 눈길이 이제 한국의 모든 영역에 대한 더 큰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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