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보수의 품격은 위기에서 나온다

입력
2020.04.06 18:00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비상경제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지금은 분명히 위기다. 코로나19의 위세는 꺾일 줄 모르고 전 세계로 확산되며 공포를 가중시키고 있다. 당장은 건강이 최우선이지만 그 다음은 경제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동반한다. 대한민국의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정치가는 정부가 경제 위기의 주범이라고 핏대를 올리지만 기실 세계경제에 비춰 보면 그나마 우리는 양호한 편이다. 자기네들 편한 방식으로 떼 내어 침소봉대하는 게 선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그런 아전인수에 속는 이들이 있으니 떠들어 대는 것이겠지만) 무책임한 짓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가 생계지원 대책을 내놓고 급기야 정부에서도 대책을 내놓았다. 당연히 시시비비가 따르지만 지금은 그런 정치적 셈속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수십 조의 돈을 풀겠다는 정부에 대해 헬리콥터에서 현금 살포하는 것이라며 비난하던 자들조차 입 다물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나도 모든 강연이 취소되어 원고료를 제외하고는 수입이 없다. 난감하다. 그래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은 어찌 살고 버텨 갈까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살아나야 한다. 코로나19도 경제 위기도 극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늘 그런 위기를 이겨 내고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으니. 당장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응에 대해 전 세계가 주목하고 찬사를 보내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정부들이 저지른 위기 대응의 문제들을 점검하고 선제적으로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청난 예산을 덜어 내 국민들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그걸 포퓰리즘이라 떠드는 이들도 있다. 당장 가계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자들의 입이다. 미국은 무려 5,000조원을 풀기로 했다. 유럽 국가들도 비슷하다. 거기에는 입도 벙긋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는 짓까불며 발목을 잡는다. 보건의 위기와 더불어 경제, 특히 가계의 위기에 대해 공감의 폭을 넓히고 선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위기에는 그것을 능가할 대응이 필요하다.

결국 선별적으로 10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은 곤혹스러운 듯하다. 돈을 받게 되는 중하위 계층에 속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공돈’을 받지 못해 야속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더 많은 세금을 냈는데 혜택은 없다며 투덜대기도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당장 수입이 사라진 형편이라 곤혹스럽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수준 높게 진화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나는 전 국민에게 지급한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빠듯한 국가 예산을 헐어 내는 게 좋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큰 이익과 가치를 도출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면 된다. 상위소득자들 가운데 그 돈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 없는 이들 많다. 그들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다. 그런데 국가에서 돈을 받았다. 그 ‘공돈’ 쓰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나는 그 돈 없어도 된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 위해 내가 받은 돈을 내놓겠다”라며 쾌척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10%만 돼도 감동이다. 돈 많은데 그 돈 날름 받아 쓴 사람들도 뜨끔하고 부끄러울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받은 돈에 자기 돈 얹어 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감동이 퍼진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수준과 연대는 더 고양될 것이다. 악화되는 양극화를 누그러뜨리는 부수효과도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보수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다시 올 것인가? 진정한 보수는 위기 상황에서 솔선수범하며 사회적 가치를 지켜내는 세력이다. 보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에서 온다. 그게 보수의 품격이다. 불행히도 우리에게 그런 보수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보수를 참칭하는 수구의 위세에 길들여졌기 때문일까? 이 위기에 그런 수구와 어떻게 다른 보수의 품격을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번 가계 ‘포괄적’ 지원은 좋은 기회일 수 있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왕 닥친 일이고 풀어야 할 위기다. 이 위기를 진정한 기회로 만들고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고 수준 높게 만들 수 있는 ‘보수의 품격’ ‘품격 있는 보수’의 진면목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계기로 삼았어야 한다. 돈이 때로는 우리에게 품격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위기를 더 멋지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 내 코가 석 자지만 만약 내가 그것을 받더라도 (얹어 줄 돈은 없지만) 의연하게 사회에 환원해서 나보다 더 힘든 이들 위해, 우리의 위기를 이겨 내는 이들 위해 내놓겠다. 덕분에 나도 그런 품격 있는 보수가 되고 싶다. 수준을 높이자.

하나를 줄여 덜 궁핍할 수도 있지만 때론 둘을 내주고 그 몇 배를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게 위기가 주는 기회다. 건강한 보수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그걸 짓뭉개는 자들의 협량함이 더 드세니 그걸 모르는 게 아쉽고 안타깝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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