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마리 앙투아네트, 너무도 기이했던 헤어스타일

입력
2020.04.02 18:00
수정
2020.04.02 18:55
25면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Élisabeth Vigée Le Brun)이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 속 푸프(왼쪽)와 그녀의 다른 푸프 <아름다운 암탉 머리>의 캐리커처(오른쪽). 이 캐리커처는 원래 푸프의 모습을 다소 과장하여 풍자적으로 그린 것이다.(출처: Wikipedia)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Élisabeth Vigée Le Brun)이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 속 푸프(왼쪽)와 그녀의 다른 푸프 <아름다운 암탉 머리>의 캐리커처(오른쪽). 이 캐리커처는 원래 푸프의 모습을 다소 과장하여 풍자적으로 그린 것이다.(출처: Wikipedia)

마리 앙투아네트는 18세기 프랑스 궁정의 패셔니스타로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로즈 베르탱이 만든 드레스로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의 패션을 주도했다. 또한, 그녀는 왕실 미용사 레오나르 오티에가 고안한 ‘푸프(pouf)’라는 헤어 스타일로 유명했다. 푸프는 머리를 30~60cm까지 위쪽으로 높이고 풍선같이 부풀려 리본, 꽃, 깃털, 과일과 채소, 액세서리 및 다양한 소품으로 장식하고 스타일링한 것이다.

왼쪽 그림은 18세기 프랑스의 여성 화가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룅이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다. 오늘날 비제 르 브룅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친 화가로서,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 중 하나다. 화가는 초상화를 통해 푸프와 호화로운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패션 리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오른쪽 그림의 푸프는 왼쪽 것보다 훨씬 대담하다. 이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장 놀랍고 기발한 푸프 중 하나인 ‘아름다운 암탉 머리’로서, 당시 영불 간의 해전에서 프랑스 군함 '아름다운 암탉'이 영국군을 대파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머리 위에 얇은 철사 프레임과 쿠션으로 받침대를 만들고, 그것에 가발과 실제 머리카락을 채운 후 밀, 옥수수 가루로 만든 파우더를 뿌리고 커다란 선박을 비롯한 장식물들을 얹었다.

레오나르 오티에는 계속 새롭고 독창적인 헤어 스타일을 고안해냈고, 매번 더 높고 화려한 푸프를 만들었다. 심지어 최대 약 120㎝ 높이, 5㎏ 무게의 푸프까지 등장했다. 이것들은 아주 무거웠고 목 관절에 무리를 주었다. 또한 동물 지방으로 만든 포마드와 파우더로 코팅된 머리를 보통 1, 2주간 감지 않고 두었기 때문에 악취를 풍겼고 온갖 해충이 번식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푸프로 인해 21세부터 탈모 증상이 있었다. 한편 베르사유 궁정의 귀부인들과 파리의 젊은 여성들은 너도나도 왕비의 헤어 스타일을 모방하려 했고, 워낙 비용이 많이 드는 푸프 때문에 큰 빚을 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가체라는 비슷한 헤어 스타일이 유행했다. 너무 무거워 목뼈가 부러져 죽는 사례도 있었고, 최상급의 가체는 기와집 두 채 값에 이를 정도로 비쌌다. 이렇듯 사회, 경제적 폐해가 심각해지자, 영조는 가체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움을 위한 여성들의 욕망은 유사한 듯하다.

어떤 푸프는 정치, 사회적 이슈나 가십거리를 소재로 했는데 위의 ‘아름다운 암탉 머리’가 대표적인 예다. 여성들은 푸프를 통해 당대의 사건들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사회적 의식을 과시하려 했다. 조선시대의 가체 역시 여성들이 부귀와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 것임을 볼 때, 때때로 인간의 허영과 욕망은 참 이상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한편 마리 앙투아네트의 고가의 푸프와 드레스는 그녀의 불륜, 도박 스캔들과 함께 국민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사실 프랑스 왕실의 전례로 볼 때 마리 앙투아네트의 씀씀이는 특별히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검소한 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시민혁명의 기운이 도래하면서, 그녀는 왕실 사치와 악덕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마침내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촌부같은 초라한 차림새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오를 때, 그토록 정성스럽게 가꾸었던 머리카락은 짧게 깎이고 백발로 변해 있었다. 비제 르 브룅이 그린 초상화 속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온데간데없었고,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의 끝은 너무도 초라했다. 한때 그녀의 옷장은 화려한 꿈이었지만 결국 악몽이 되었다. 아름다움이란 허상일까?

김선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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