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스파게티 나무와 얼음 사냥꾼(4.1)

입력
2020.04.01 04:30
26면
구독
1957년 만우절, BBC가 '소개'한 스파게티 나무. 농부가 수확하는 게 파스타 면이다. BBC 화면, 위키피디아.
1957년 만우절, BBC가 '소개'한 스파게티 나무. 농부가 수확하는 게 파스타 면이다. BBC 화면, 위키피디아.

코로나19 충격 때문에 올해 만우절은 삼가는 마음으로 보내야겠지만, 만우절의 추억까지 덮는 건 그래도 허전하다. ‘역대급’ 거짓말들을 들추어보자. 가장 그럴싸한 거짓말은 99%의 진실에 버무린 1%의 거짓말이란 말이 있듯이, 그 장난들의 주역들은, 저명 과학자나 유력 언론사 등 대부분 권위와 신뢰를 누려온 이들이었다.

1957년 만우절, 영국 방송 BBC는 세상의 진귀한 것들을 소개하는 ‘파노라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스위스 남부 티치노주의 한 농민이 ‘스파게티’를 수확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신기한 신품종을 개발했다는 게 아니라, 지난 겨울이 따뜻해 스파게티를 일찍 수확할 수 있었고 다행히 바구미도 없어서 농민들이 기뻐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새로운 점이라면 종자를 개량해 스파게티의 길이를 거의 일정하게 수확할 수 있게 됐다는 점 정도였다. 농부가 옥수수처럼 생긴 식물 대에서 스파게티를 따는 영상도 물론 방영됐다.

1950년대 영국인에게 파스타는 이국적이고 무척 귀한 음식이었고, 더러 먹어본 이들도 대개는 토마토소스에 버무린 통조림 파스타를 먹던 때였다. 스파게티를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다는 걸 아는 이도 당연히 드물었다.

다음 날 시청자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어디서 종자를 구할 수 있느냐’ ‘상세한 재배법도 알려달라’…. 방송사 직원 중에는 “스파게티를 잘라 토마토소스 통에 꽂아두고 잘 자라기를 기도해보라”고 응답한 이도 있었다고 한다. 뒷얘기는 알려진 바 없다.

95년 ‘디스커버리’지는 ‘저명 야생 동물학자 아프릴레 파조(Aprille Pazzo)’ 박사가 남극서 얼음에 구멍을 뚫어 펭귄을 사냥하는 새로운 포식 종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종은 이마에 엄청난 혈관이 분포해 있어 그 열기로 펭귄이 머무는 얼음을 녹여 물에 빠지는 펭귄을 사냥한다는 게 파조 박사의 설명이었다. 아프릴레 파조는 이탈리아어로 ‘April Fool(만우절)’이란 뜻이었지만, 디스커버리는 창간 이래 가장 뜨거운 독자 반응을 누렸다.

98년 미국 뉴멕시코의 한 과학저널은 앨라배마 주 의회가 원주율 파이(π)의 무리수(3.141592…)를 삼위일체의 성서적 유리수(3)로 바꾸기로 결의했다고 보도했다. 만우절 장난을 빙자해, 진화론 교육을 억제해 온 주 교육정책을 비꼰 거였다. 주 의회는 난데없는 항의 전화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