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의 반려배려] 총선 동물 공약, 팥소 없는 찐빵 될라

입력
2020.03.17 16:00
지난해 9월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한 개농장에서 강아지가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4월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기자는 각 정당을 대상으로 동물 공약에 대한 질의를 보낸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주변에선 “동물 공약이 있겠냐”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5개 당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물보호 관련 정책을 마련하고 답변을 해왔던 게 기억에 남는다.

2017년 5월 19대 대통령 선거 때도 주요 대선 후보 5명에게 동물 공약에 대한 질의를 보냈다. 1년 전 총선 때보다 동물의 법적 지위 향상이나 개 식용 금지 등에 대해 적극적인 답변이 많았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이 늘고, 동물 복지에 대한 시민 인식이 높아진 점도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곤히 잠든 유기견 ‘앨리스’를 품에 안은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마약 방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유기견 ‘토리’를 입양하면서 유기견 출신 첫 ‘퍼스트 도그’가 탄생하기도 했다.

2020년 3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번에는 각 정당들이 앞다퉈 먼저 동물 공약 발표에 나섰다. 4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미래통합당이 일찌감치 1월부터 반려동물 5대 공약을 내놓은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도 잇따라 동물복지 공약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기견 토리를 입양하겠다는 공약(왼쪽)을 지켰다. 케어 제공

동물 공약을 살펴보면 꼼꼼히 다 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반려인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내용을 내세웠다. 두 정당은 진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도입과 동물학대 처벌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차별화된 정책으로는 민주당의 생태동물원 추진, 통합당의 개 사육농가 폐업 지원을 꼽을 수 있다. 정의당은 헌법에 동물보호 내용을 담고,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물자유연대, 카라 등 18개 동물단체로 구성된 ‘동물권 총선 대응연대’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요구를 총선 공약에 반영하라고 각 당에 촉구했다. ‘사람-동물-환경’ 모두가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한 내용 대신 반려인들의 표심 잡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동물권 총선 대응연대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동물복지 증진 총선공약 반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 헌법이나 민법 내 동물의 법적 지위 재정의는 2017년 대선 당시 후보 5명 중 3명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이번 민주당과 통합당의 공약에는 빠져 있다. 개 식용 문제 역시 민주당과 정의당의 공약에는 찾아볼 수 없다. 동물복지를 논하기 위한 핵심 부분은 빠진 채 선심성 정책 위주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불법 생산업장 규제 강화 등 민주당과 통합당의 일부 동물 공약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복지 5개년 계획을 ‘복붙’(복사 붙이기)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각 정당이 동물 공약을 내놓고 강조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 동물 공약을 내놓기만 하면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는 지났다. 유권자들은 각 당의 공약이 지금까지 얼마나 실현됐는지, 또 내놓은 공약이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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