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오! 베트남] 위기 속 한국-베트남 우정, 서로 ‘윈윈’… 교민들은 협조ㆍ베트남은 배려

입력
2020.03.26 04:30
14면

 <3>교민사회 코로나19 분투기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2일부터 베트남 속짱 지역의 격리시설에 수용된 한국민들이 16일 출소를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2주 동안 배려를 아끼지 않은 현지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호찌민 한인회 제공
2일부터 베트남 속짱 지역의 격리시설에 수용된 한국민들이 16일 출소를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2주 동안 배려를 아끼지 않은 현지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호찌민 한인회 제공

16일 오전 호찌민에서 차로 4시간 이상 떨어진 베트남 남부 속짱 격리시설. 2일부터 이 곳에 수용된 30명의 한국민이 베트남 공안들과 웃으며 정답게 악수를 나누는 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미묘하게 흐르던 반감 기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격리자와 시설 관리자들은 2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급된 한인회의 생필품, 음식 등을 나눠 쓰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다. 한국 교민들은 일방 격리에 따른 당황과 분노의 감정을 말끔히 털어내고 베트남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각자 생활 터전으로 향했다. 남은 한국인 격리자 8명 역시 이튿날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설을 떠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민 입국금지 및 격리조치가 본격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동안 국내에선 베트남의 강력한 입국 억제 조치를 두고 우려와 비난이 쏟아졌지만 현지에선 조금씩 양국의 우호관계가 회복되는 분위기다. 일부 네티즌의 편협한 비방과 이간질은 온라인 가상세계에서만 존재할 뿐, 적어도 현실에선 사라졌다는 얘기다.

 교민사회 노력, 오해의 빗장 풀어 

베트남 교민들은 일부 한국 네티즌의 베트남 비하 댓글을 밀어내기 위해 양국의 코로나19 극복을 응원하는 선플을 연이어 달기도 했다. 온라인 뉴스 화면 캡처
베트남 교민들은 일부 한국 네티즌의 베트남 비하 댓글을 밀어내기 위해 양국의 코로나19 극복을 응원하는 선플을 연이어 달기도 했다. 온라인 뉴스 화면 캡처

먼저 관계 개선에 나선 쪽은 베트남 한인사회였다. 하노이, 호찌민, 다낭 등 7개 한인연합회는 이달 초부터 “한국과 베트남의 우정은 국경이 없다” “베트남 공안 당국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수긍하자” 등의 구호를 내걸고 두 차례 캠페인을 진행했다. 우리 국민 대상 종교집회와 학원 수업도 자체적으로 중지하도록 조율했다.

교민 개개인의 노력도 배가됐다. 지난달 말 이른바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 보도로 양측간 앙금이 생겼을 때에도, 이달 초 일부 한국 네티즌의 베트남 비하 댓글이 번역돼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졌을 당시에도 적극적으로 오해의 빗장을 푼 건,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은 일반 교민들이었다.

특히 교민들은 8일 베트남 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전한 한국 언론보도에 우리 네티즌의 날선 댓글이 이어지자 “갈등의 싹을 먼저 자르자”며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하노이, 호찌민 등의 대규모 교민사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인들에게 선플(착한 댓글) 운동의 필요성을 알렸고, 이후 한국발 베트남 뉴스 곳곳에는 양쪽을 모두 응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한국민과 국제결혼한 베트남 여성들의 중재도 갈등 해소에 큰 힘이 됐다. 이들은 베트남 SNS에 자국어로 “우리와 삶을 공유하는 대다수 한인은 여전히 베트남을 존중한다”는 취지의 글을 계속 올리며 진화에 나섰다. 입국 과정에서 격리된 한-베트남 가족 역시 현장에서 격앙된 민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한몫 했다. 이승태 한베 가족협의회장은 “선플 운동과 SNS 해명전으로 현지인들의 오해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면서 “근거 없이 양국 관계를 훼손하는 행동만큼은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교민들의 진정성은 일관된 구호활동으로 정점을 찍었다. 각 지역 한인회는 5만달러가 넘는 성금을 모금한 뒤 하노이 인근 꽝닌성과 호찌민 인근 껀터ㆍ속짱, 다낭 등에 분산 격리된 한국민 717명 및 베트남인 3,000여명에게 생필품과 음식을 지원했다. 성금을 내지 못한 한국 제과업체에선 간식을, 이불 제조 회사는 침구류를 아낌없이 기증했다. 교민사회의 계속된 노력에 다낭시는 23일 김석환 다낭 한국 상공인연합회(KOCHAMㆍ코참) 준비위원장 등을 300명의 지역 공안장이 참석한 전체회의에 초대해 감사 인사를 표하기도 했다.

경제단체들의 지원 사격도 이어졌다. 코참과 주한 베트남 기업가ㆍ투자협회(VKBIA)는 14일 한국민들을 살뜰히 챙긴 꽝닌성 인민위원회 측과 만나 조만간 ‘투자유치 설명회’를 개최하기로 약속했다. 위기 속에서 맺은 인연이 새로운 관계 확장의 계기가 된 것이다.

 알려지지 않았던 베트남의 호의 

베트남 다낭시 공안국이 23일 지역 공안장 전체회의에서 김석환(왼쪽 두 번째) 다낭 코참 준비위원장에게 감사 선물을 하고 있다. 코참 제공
베트남 다낭시 공안국이 23일 지역 공안장 전체회의에서 김석환(왼쪽 두 번째) 다낭 코참 준비위원장에게 감사 선물을 하고 있다. 코참 제공

베트남은 조용히 배려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뜩이나 예민한 자국민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공표하지 않았지만, 각급 정부는 격리된 한국민들을 살뜰히 챙겼다. 대표적으로 꽝닌성 인민위원회와 지역 내 바오밍호텔은 이달 초 “격리 한국민들이 낙후시설에서 고생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별도 숙소를 제공하고 식비도 자국민의 두 배 이상 지급했다. 부이티투이하인 바오밍호텔 사장은 “양국의 돈독한 관계를 고려해 한국민 숙박비를 전액 부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격리자 129명의 숙박비를 합치면 1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부이득롱 비코랜드 바오밍호텔 회장도 격리에서 해제된 한국민에게 귀국 항공권과 숙박이용권을 기부한 바 있다. 베트남 중앙정부가 유럽 출신 입국자들의 치료 비용을 개인에게 부담시키기로 결정한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에 대한 베트남 측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앙정부도 강력한 입국 제한책으로 고립된 기존 한국 교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집중했다. 베트남 노동국은 지난달 27일 주베트남 한국대사관과 회의를 통해 “베트남 내 한국 필수 인력의 신규 노동허가가 가능하도록 조율하겠다”고 밝혔다.

베트남 정부는 2일 “외국인의 노동허가 발급을 잠정 중단하라”는 응우옌쑤언푹 총리 지시가 내려온 뒤에도 특별 건의를 거쳐 코로나19 사태 확산 전 입국한 한국민에게는 발급을 별도로 추진했다. 대사관은 신규 노동허가 발급을 원하는 한국 기업 100여곳을 파악해 둔 상황이다. 현지 노동계 관계자는 “머지 않아 58개 모든 성(省)에서 한국민에 한해 노동허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현재 베트남 시설 격리에서 벗어난 한국민은 총 590명이다. 남은 127명도 이번 주 중 대부분 시설에서 나와 베트남 각지로 이동할 예정이다. 격리를 끝낸 한 기업인은 “격리 장소 대부분이 외부 접촉이 불가한 군 시설이라는 것을 입소해서야 알았다”며 “그럼에도 베트남 정부가 물품 반입을 허용하는 등 애로 사항을 해결할 수 있게 힘써 줬다”고 전했다.

윤상호 한인연합회 회장과 김종각 호찌민 한인회장은 “코로나19는 국경과 민족을 가려 침투하지 않는다”며 “양국민이 힘을 합쳐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노이 한인회 등 베트남 내 한인 유관 기관들이 14일 꽝닌성 인민위원회에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구호품을 옮기는 한국 관계자들은 하트 모양으로 양국 국기를 형상화해 변치 않은 우정을 강조했다. 하노이 코참 제공
하노이 한인회 등 베트남 내 한인 유관 기관들이 14일 꽝닌성 인민위원회에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구호품을 옮기는 한국 관계자들은 하트 모양으로 양국 국기를 형상화해 변치 않은 우정을 강조했다. 하노이 코참 제공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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