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캐슬, 사실은?] ‘원칙’은 있지만 ‘정답’은 없는 공소장 작성법

입력
2020.02.24 02: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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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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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형사재판을 열어 달라며 법원에 제출하는 문서인 공소장의 기본 요건은 간단하다. 형사소송법 제254조에는 ‘공소장에 다음 사항을 기재해야 한다’면서 △피고인의 성명 △죄명 △공소사실 △적용법조 4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검찰이 확정한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뜻하는 공소사실에는 범죄의 시일, 장소와 방법을 명시해야 한다. 사법연수원이나 법무연수원에서 배우는 공소장 작성법도 간단하다. 절도, 강도, 상해 등 죄목별로 아주 짧은 경우 두세 문장에 불과한 공소사실을 구성요건(위법한 행위를 규정한 요건)에 맞춰 쓰는 방식을 익힌다.

예컨대 상습도박죄 공소장이라면 ‘피고인은 2020년 2월 24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XX로 XX에 있는 피고인의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인터넷 도박게임 사이트에 접속해 휴대전화결제 등으로 합계 5,200만원 상당의 게임머니를 구매, 모두 7,541회에 걸쳐 속칭 맞고라는 도박을 하였다’는 식이면 된다.

복잡한 사건의 경우 이 같은 형식을 뼈대로 얼마든지 살을 붙일 수도 있다. 통상 공소장은 수사팀에서 사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부부장급 검사나, 필력이 좋은 검사들이 맡아 작성한다. 한번 펜대를 잡은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제출되는 의견서도 쓰게 되는 일이 많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 기재 방법은 일률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검사들마다 기소 내용에 대해 적절한 방식으로 공소장을 작성한다”고 설명했다. 사건마다, 쓰는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다만 형사소송규칙과 대법원 판례들은 검찰에 공소장 일본주의를 준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공소사실의 첫머리에 공소사실과 관계없이 법원의 예단이 생기게 할 사유를 불필요하게 나열하는 것은 옳지 않다”거나, “범행에 이르게 된 동기나 경위를 명확히 나타내기 위해 적시한 것으로 보이는 때에는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 등의 판례가 쌓여왔다.

그럼에도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했다는 판단 이유만으로 법원이 공소를 기각하는 예는 많지 않다. 대법원 역시 “법관 또는 배심원에게 예단을 생기게 하여 범죄사실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당해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다소 모호한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피고인 측에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를 제기하는 사건은 워낙 중대한 사건들이 많고 주목도가 높아 하급심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긴 하지만 공소 기각 등의 결단으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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