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문빠’ 정치 팬덤의 저주

입력
2020.02.19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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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백서' 필진인 김남국 변호사(왼쪽)가 18일 서울 강서갑 출마 기자회견을 예정했다 취소한 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오른쪽)을 향해 "왜 허구적인 '조국 수호' 프레임을 선거에 이용하려고 하느냐"라며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사진은 국회 정론관에서 각각 기자회견하는 두 사람의 모습. 연합뉴스
'조국백서' 필진인 김남국 변호사(왼쪽)가 18일 서울 강서갑 출마 기자회견을 예정했다 취소한 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오른쪽)을 향해 "왜 허구적인 '조국 수호' 프레임을 선거에 이용하려고 하느냐"라며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사진은 국회 정론관에서 각각 기자회견하는 두 사람의 모습. 연합뉴스

총선을 앞두고 ‘문빠’의 극성스러운 행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임미리 교수 고발을 취하하고 사과했지만 일부 친문 지지층은 개별적으로 선관위 신고 캠페인을 벌이며 정권 홍위병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반찬가게 주인이 시장 경기를 묻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지 같아요. 너무 장사가 안 돼요”라고 불경하게 답했다며 인신공격성 댓글을 달고 신상털이로 불매운동까지 벌인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 조국 사태 당시 소신 발언을 한 금태섭 의원 지역구에 조국 지지 집회를 주도한 변호사가 공천을 신청한 것도 문빠의 영향력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자 우여곡절 끝에 조국 국면에서 빠져 나온 당 지도부는 총선 전선이 다시 조국 수호로 흐를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진보 논객 진중권은 “극렬 지지자들이 민주당에는 저주가 될 것이고, 이제 그 저주가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이 문빠에 발목 잡혀 잘못을 알고도 오류를 수정하지 못할 거라는 예언이다. 조금 과장된 분석 같지만 아예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 민주당이 열성 지지자로 분류하는 온라인 당원은 10만명 정도다. 전체 권리당원 86만여명의 15%에 불과하지만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문재인은 우리가 지킨다’는 열정으로 뭉친 이들은 ‘좌표’가 찍히면 일사불란하게 행동한다. 반면 같은 진영이라도 입장이 다르면 가차 없이 공격해 대는 이들의 극단적 행태를 지켜본 의원들은 생각이 달라도 공개석상에선 침묵을 선택하고 있다. 당의 헤게모니가 문빠에게 넘어갔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다. 지금 민주당 모습은 강경 보수 유권자 단체인 ‘티파티(Tea Party)’에 찍힐까 봐 눈치를 보는 미국 공화당과도 흡사하다. 공화당 의원들도 “티파티에게 더 이상 휘둘려선 안 된다”는 불만이 들끓지만, 쉽게 나서서 말하진 못한다. 한마디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 공당과 정치 팬덤은 가는 길이 다르다. 정치 팬덤은 이념과 노선이 아닌, 정서와 서사로 뭉친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들도 정의를 외치지만 정의의 기준을 자신의 숭배 대상에 맞춘다는 게 문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가장 무섭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알 생각이 없다”고 했다. 신념윤리와 함께 책임윤리도 실천해야 하는 공당이 정치 팬덤에 끌려가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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