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다니구치 지로의 세계(2.11)

입력
2020.02.11 04:30
수정
2020.02.11 18: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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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3년 전 오늘 별세했다. 사진은 '개를 기르다'(청년사)의 한 컷.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3년 전 오늘 별세했다. 사진은 '개를 기르다'(청년사)의 한 컷.

비평가 강상준은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1947~2017)를 “(서사를) 넘치기 직전까지” 채울 줄 아는 작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독자가 창조적으로 개입할 여백을 허락한다는 건 비단 만화가만의 미덕은 아닐 테지만, 만화여서 더 귀하고 값진 역량이다. 만화는 대중문화 안에서도 가장 빠르게 들러붙거나 미끄러지는 감각적인 장르 중 하나여서 캐릭터는 과장되고 서사는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극단적으로’라는 수식어의 자리에 ‘만화 같은’이란 부사를 쓰기도 한다. 지로는 그 장르의 한계 혹은 매력에 한껏 저항한, 그럼으로써 만화 장르의 경계와 이미지를 성실히 확장한 작가였다.

지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개를 기르다’(박숙경 옮김, 청년사)의 매력도 ‘넘치기 직전까지’ 나아간 데 있다. ‘개를 기르다’는 14년 10개월을 살고 간 반려견 ‘탐’의 마지막 8개월의 일상을, 탐의 보호자 부부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노쇠해서 잘 걷지도 못하게 된 개는 급기야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다. 욕창마저 생긴 탐을 돌보는 부부의 수고도 점점 커져간다. 결벽하게 용변을 가리던 탐은 누운 자리에서 변을 쏟는다. “나도 아내도 탐을 돌보는 게 조금씩 힘겨워진다.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부부는 고통에 발작을 하면서도 버티는 탐이 한편 가련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안타깝기도 하고, “목소리를 내면 곧 흐느끼게 될 것 같아 둘 다 입을 꼭” 다물기도 한다. 어린 탐과 함께했던 행복 속에 그런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고도 고백한다. 탐이 떠난 뒤 그들은 상실감을 견디며 “그것은 더욱 크고 소중한 것이었다”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지로는 단 한순간도, 그림으로도, 끝내 탐의 마음을 섣불리 대변하지 않았다.

자기가 기르던 개를 보내고 몇 달 뒤 작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좀 더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장면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가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주 책장을 덮고 저마다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했다. 그는 자전적 작품 ‘겨울 동물원’과 대표작 ‘고독한 미식가’ ‘신들의 봉우리’ 역작 ‘도련님의 시대’ 등을 남기고 3년 전 오늘 별세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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