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어린이처럼] 종이 한 조각

입력
2020.02.07 04:30

최근 작가들의 발언을 바라보는 마음이 몹시 무겁다. 동질감, 죄책감, 자괴감, 허탈함이 계속 밀려든다. 일찍이 여성 작가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뛰어난 여성 서사를 내놓은 윤이형 작가는 절필을 선언했다. 본인이 지난해 수상한 이상문학상의 파행 운영 때문이다. 아무 잘못 없는 작가가 아무 잘못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절필뿐이었다.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인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 저작권 침해 금지 2심 소송에서 패소했다.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양도한 계약이 불공정했고 그림책의 캐릭터 저작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러 신인작가들은 원고료, 인세, 상금, 저작권, 출판권에 관계된 불공정한 관행이 변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학 출판계의 불평등, 불합리한 체질 개선에 작가 개인이 나서며 온몸이 깨지는 상황이다.

작가들이 분노하고 고통받으며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변화를 외치는 이유는 자신의 ‘작품’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권리나 돈은 다음 일이다. 윤이형 작가는 절필이라는 극단의 결정까지 한 가장 큰 이유가 작품을 잃어버렸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고 했다. 백희나 작가는 16년 전 데뷔작인 ‘구름빵’이 큰 성공을 거둔 한편 고통으로 남은 책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이 권리를 말함은 그걸 휘두르고 행사하겠다는 의지라기보다는 작품이 사회에서 정당한 과정과 상태로 놓여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윤이형 작가와 백희나 작가의 일은 오직 그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문학 출판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작가, 화가, 편집자, 출판 관련자 그리고 독자의 일이다. 결국 그것이 한국 문학이라 불릴 것들, 즉 한 편의 시와 소설, 한 권의 책을 만드는데 촘촘히 관계한다.

작가는 도화지와 원고지만 있으면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너희는 도화지와 원고지만 있어도 살잖아’라고 여기고, ‘너희가 소중해하는 작품을 널리 알리고 사랑받게 해 줄게’하며 아무렇게나 뺏고 내돌려서는 안 된다. 도화지와 원고지에 삶의 의미 전부를 두는 사람들이니 더욱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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