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이웃 외면하는 정부… 노숙인 3년 만에 다시 늘었다

입력
2020.01.20 04:40
수정
2020.01.20 08:03
10면

2018년 전국 노숙인 1만6465명… 쪽방 거주 등 제외하면 3.8% 늘어

눈이 내리고 있는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이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눈이 내리고 있는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이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숙인 윤모(43)씨는 지난해 거리생활을 청산하고 가까스로 고시원에 입소했다. 주거지를 얻으면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도 신청할 수 있었다. 윤씨는 이를 계기로 자활사업에 참여해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는 노숙인 지원 사회단체의 주선으로 유명 일간지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1월 현재, 그는 사회단체와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췄다. 다시 거리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했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노숙인이 사회적 관계를 회복할 때까지 알코올 문제 해결 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중앙정부는 각종 급여만 지급할 뿐이고 지방자치단체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홍씨는 “거리로 돌아간 이유를 단언할 수 없지만 윤씨 역시 고시원에선 자활의지를 이어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혁신적 포용국가의 틀을 단단하게 다졌다”고 정부의 성과를 평가했지만 노숙인의 사회복귀 지원엔 여전히 구멍이 뚫려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이 중앙정부ㆍ지자체가 실시한 노숙인 자립지원 정책의 2018년도 성과를 평가한 결과, 거리의 노숙인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평가 보고서에는 정부가 제출한 성과자료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내용까지 담겼다. 노숙인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 사이에서는 정부가 서류상 사업을 만들어내기에 바쁠 뿐, 실행엔 관심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19일 보사연이 내놓은 ‘2018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정책 성과평가’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전국 노숙인은 1만6,465명으로 전년보다 68명 줄었다. 그러나 쪽방주민(5,664명)과 일시보호시설 및 요양시설 입소자(9,906명) 등을 제외한 거리에 있는 노숙인(895명)은 오히려 3.8%(33명) 증가했다. 순수 거리 노숙인 증가는 최근 3년 만에 처음이다. 이로써 거리ㆍ시설 노숙인을 매년 2%씩 줄이겠다는 ‘제1차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2016-2020)’ 목표 달성도 실패했다.

보사연은 보고서 곳곳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수행 의지를 의심했다. 종합계획이 제시한 4대 분야 13개 과제를 평가한 결과, 노숙인 시설체계 전문화 등 종합계획에 맞춰 개선이 이뤄진 부분들이 없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수년째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거나 관련부처가 외면하는 분야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고용노동부의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노숙인 고용지원 사업은 매우 소극적인 형태로 고용 확대 등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확인된다’는 박한 평가를 받았다. 예산 없이 수행되는 사업이 있다는 지적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노숙인 의료지원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소요된 예산이 전혀 없었다.

2020-01-19(한국일보)그림 3/2020-01-19(한국일보)
2020-01-19(한국일보)그림 3/2020-01-19(한국일보)

무엇보다 정부가 제출한 성과 자료를 믿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여름, 겨울철이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사고 소식이 이어지는데 모든 광역자치단체가 폭염ㆍ저체온증으로 인한 관련 사망자를 ‘0명’으로 보고한 것이다. 보사연은 ‘전국적으로 사망자가 없다는 보고인데 신뢰성 검증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취약시기 거리 노숙인 보호대책 평가점수는 2016년부터 매년 낮아지고 있다.

홍정훈 참여연대 간사는 “폭염 사망자가 0명이라니 말도 안 된다”라면서 “기초지자체는 능력도, 의지도 없고 중앙정부는 모니터링(감시)할 역량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홍 간사는 찜질방이나 고시원 등에서 거주하다가 일감이 떨어지면 노숙인이 되는 주거불안계층까지 포함하면 노숙인은 40만여명에 이를 것이라면서 “(정부는) 말만 공허한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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