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퇴임 후엔 잊힌 사람 되고 싶다” 웃음 유도하기도

입력
2020.01.14 15:43
수정
2020.01.14 23: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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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프터에 기자 이름·소속과 질문 요지 떠있어” 각본설 차단

기자들 소품 활용 거의 안해… 예년보다 차분한 분위기 진행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을 하며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을 하며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직 대통령들의 뒷모습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본인은 어떤 모습이 될 것 같은가.”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황할 법한 질문이 나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하하” 큰 소리로 웃어넘겼다. 이어 “대통령 이후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 때 전력을 다하고, 끝난 뒤엔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솔직히 구체적인 생각을 별로 안 해봤다. 좋지 않은 모습, 이런 건 아마 없을 것이다”라는 대목에선 좌중에서 일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칫 가라앉을 뻔 했던 분위기는 문 대통령의 농담 섞인 답변으로 오히려 살아났다.

문 대통령이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은 여러 번 포착됐다. 문 대통령은 첫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정면의 프롬프터(자막 등이 나오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모니터가 2대 있다. 질문하신 기자님 성명과 소속, 질문 요지가 떠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답변이 올라와있는 것 아니냐’ (의혹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미리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이면서다.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제기되는 ‘질문 사전 협의설’ ‘각본설’을 문 대통령이 ‘선제 차단’하자 장내엔 다시 웃음이 터졌다.

문 대통령은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인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취지의 한 지역신문 기자의 질문을 받고 “설악산 케이블카나 곤돌라 문제를 말씀하시지 않고, 일반적인 문제를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예년보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된 세 번째 기자회견이라, 문 대통령은 물론 참석 기자들도 어느 정도 형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질문과 답변의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했다”고 소개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지목을 받기 위해 기자들이 사용하던 소품도 상당 부분 자취를 감췄다. 2018년 기자회견 때는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등 인형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한 기자는 지난해처럼 한복 차림에 부채를 들고 참석했지만, 질문 기회를 얻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치열한 질문 경쟁에 난처한 듯 “제가 마음이 약해서요”라고 여러 번 말하기도 했다.

당초 90분으로 예정됐던 이날 회견은 100분을 훌쩍 넘겨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90분을 넘겼다’고 안내한 이후에도 문 대통령은 2명의 추가 질문을 더 받았다.

회견에 앞서 영빈관에는 트로트 가수 ‘유산슬’(방송인 유재석)의 ‘사랑의 재개발’이 흘러나와 이목을 끌었다. 고 대변인은 “배경음악을 통해서도 ‘확실한 변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퇴장할 땐 ‘피곤하면 잠깐 쉬어가, 갈 길은 아직 머니까’라는 가사가 담긴 이적의 ‘같이 걸을까’가 울려 퍼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처럼 앞 열에 자리한 일부 기자들과 악수를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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