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칼럼] 스티븐 호킹 박사님 생일에

입력
2020.01.07 18:00
7일 산불이 휩쓴 호주 애들레이드 남서부의 캥거루 섬에서 야생동물 구조요원이 코알라를 구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늘 1월 8일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일(1642년)이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생일(1942년)이다. 정확히 300년의 시차를 두고 우리의 세계관을 바꾼 위대한 과학자 두 명이 태어났다. 또 3월 14일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생일(1879년)이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망일(2018년)이다. 1년은 365일뿐이니 생일이나 사망일이 같은 건 별일이 아니다. 하지만 왠지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삶과 죽음은 갈릴레이와 아인슈타인의 생일과 엮이면서 우리에게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세계 시민들에게 블랙홀과 시간의 역사를 선물했다. 물론 그가 만들어낸 말도 아니고 그가 밝혀낸 일도 아니다. 하지만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아니었다면 그런 단어를 시민들이 쉽게 입에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시간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138억년이라는 장대한 시간을 선물했다.

호킹 박사는 2010년부터 세계 시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개척하라고 촉구했다. 우리에게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하라고 주장했다. 1980년대 최고의 유행어였던 김병조의 “지구를 떠나거라” 또는 “나가 놀아라”와는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 김병조가 천태만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제발 우리를 방해하지 말고 다른 곳에서 놀라는 뜻으로 한 말이라면 호킹 박사는 지구에만 머물면 인류라는 생물종이 멸종위기에 처할 테니 제발 다른 곳을 찾아 종을 보존하라는 뜻으로 말했다.

호킹 박사에게 지구는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6,600만년 전처럼 거대한 소행성이 충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든 지구의 과학자들이 방어해낼 것이다. 자연에서 비롯된 위험은 인간이 해결하면 된다. 호킹 박사의 걱정은 따로 있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위험이다. 인구 폭발, 환경오염, 핵전쟁 같은 이유로 머지않아 지구는 인류가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단지 호킹 박사만의 생각은 아니다. 크리스퍼 놀런 감독과 중력파 발견으로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킵손 박사는 2014년 작품 ‘인터스텔라’에서 같은 이야기를 펼친다. 20세기 인류가 저지른 잘못으로 지구 기후가 급격히 변하였고 그 결과 전 세계에 식량 위기가 닥쳤다. 놀런 감독과 킵손 박사의 메시지는 하나다. “인류 종의 보존을 위해 지구를 포기하고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라.”

인터스텔라에서는 지나친 상상력을 발휘하여 웜홀을 통한 우주 여행을 하지만 호킹 박사의 대안은 그럴싸하다. 화성이다. 영화 ‘마션’에서 보듯이 인류는 화성에서 어떻게든 생존할 수 있을 것 같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역시 화성을 꿈꾼다. 그런데 화성까지 갈 수 있을까. 인류가 가장 멀리 도달한 곳은 빛의 속도로 1.3초밖에 안 걸리는 달이다. 하지만 여태 근처에 가본 사람이 채 서른 명이 안 된다. 그런데 화성까지 가려면 빛의 속도로 3분2초나 걸린다. 당연히 아무도 못 가봤다. 스페이스 X로 화성까지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몇 명이나 가겠는가?

호킹 박사의 대안은 실현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호킹 박사의 경고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살기 좋다고 소문난 호주에서 말이다. 호주는 거대한 대륙이다. 하지만 해안선을 제외하면 화성처럼 붉은 사막이다. 참으로 아름답다. 나는 작년 9월 말부터 18일 동안 호주 대륙을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대각선을 그리며 자동차 여행을 했다. 하루에 사막을 수백 킬로미터 달린 후 마른 덤불을 모아 불을 피워 지내는 부시맨 캠핑의 매력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여행의 3분의 1을 들불 속에서 달렸다. 사방에 불이 났다. 소방대에 길이 막혀 수백 킬로미터를 돌아가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늘 있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작년 9월에 시작된 들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의 80배가 넘는 면적이 불에 탔다. 수십 명이 죽었다. 그리고 5억마리에 가까운 척추동물이 불에 타서 사라졌다.

호주 대륙에 살고 있는 동물의 87%는 오로지 호주에만 살고 있는 고유종이다. 코알라의 30%가 불에 타서 죽었다. 이들의 서식지 가운데 80%가 사라졌다. 화재가 진압된다고 해도 생존한 코알라들은 서식지 부족 사태를 겪게 될 것이다. 최근 철망을 넘지 못하고 불에 타 죽은 어린 캥거루와 피부가 붉게 탄 코알라에게 젖병으로 물을 먹이는 소방관의 사진이 보도된 다음에야 우리는 호주 들불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캥거루와 코알라지만 곧 그게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이번 호주 들불의 원인은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가열이다. 산업화 이후 지구 기온 상승이 2도에 도달하면 우리는 온 지구에서 들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2030년까지 10년 안에 이산화탄소 순 배출을 제로(0)로 만들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펼쳐질 장면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를 떠나는 대신 지구를 지키겠습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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