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칼럼] 바 험벅!

입력
2019.12.24 18:00

몇 년째 연말이면 한국일보사 16층을 방문한다. 한국일보가 1960년에 제정한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을 고르기 위해서다. 내년 초에 시상하는 이 상은 이제 60회를 맞았다. 무수히 많은 상이 명멸하는 동안 60년을 이어왔다니, (한국일보 지면에 쓰기는 민망하지만) 한국일보는 참 꾸준한 신문이다. 한국일보에서 더 꾸준한 게 있으니 그것은 1954년 창간한 해부터 지금까지 정식 연재되고 있는 만화다. ‘TV 마당’ 면 아래에 가로로 연재되는 세 칸짜리 만화 ‘블론디’가 바로 그것. 제목은 블론디이지만 그녀가 등장하지 않는 날이 많다. 블론디보다는 그의 남편인 대그우드가 더 많이 나온다.

이 만화는 미국에서는 1930년에 시작되었다. 1901년생 칙 영이 1930년 경제공황기에 신문연재를 시작했고, 그가 죽자 그의 아들인 1938년생 딘 영이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요즘 연재에는 작가 이름이 딘 영과 존 마셜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딘 영이 죽어도 만화는 계속될 것 같다. 그야말로 결말이 보이지 않는 만화다.

한국일보 독자라면 새벽마다 블론디와 대그우드가 아들과 딸, 대그우드 회사 사장, 카풀 동료들 또는 동네 꼬마, 그리고 우편집배원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볼 것이다. 사실 만화가 아주 재밌지는 않다. 우리나라 시사만화들이 주는 청량감이나 촌철살인의 아이디어는 볼 수 없다. 그냥 평범한 일상 이야기다. 그래서 오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계속 보게 되는 것은 중독성 때문이다. 오늘은 대그우드가 무슨 허튼 짓을 할지 궁금하다. 그러면서 조금씩 영어 공부를 하게 된다. 지난 토요일(12월 21일)자 만화는 두 칸짜리였다.

눈이 잔뜩 내리는 날이다. 첫 번째 칸에서 대그우드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잔뜩 배달하는 집배원 아저씨 비즐리에게 “Seoson’s Greetings!”라고 인사한다. 그 칸 밑에는 “즐거운 명절 되세요.”라는 자막이 달려 있다. 뭐, 이 정도는 나도 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칸을 통으로 튼 널찍한 두 번째 칸에서 집배원 아저씨는 혼잣말을 한다. “Bah, Humbug!”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한때 영어 번역가로 일했던 나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딱 봐도 정상적인 영어가 아니다. 이럴 때를 위해 자막이 있는 거다. 과연 자막에는 뭐라고 되어 있을까? “바 험벅!” 이게 뭐냐!

한국일보는 친절한 신문이다. 그 아래 상세한 해설을 달아놨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이 말한 대사로 유명하며,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는 감탄의 표현”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카드 때문에 업무량이 늘어난 집배원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감탄사다.

나는 이 만화를 사진 찍어 페이스북 담벼락에 게시하면서 이 만화를 이해할 수 있냐고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물었다. 댓글을 단 사람들 가운데 “바 험벅!”이 어디에서 온 말인지 아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만화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다. 그렇다면 “바 험벅!”은 괜찮은 감탄사인 것 같다. 느낌이 살아 있다. 이 만화를 본 후 우연히 미국 드라마에서 이 대사를 들었다. “바 험벅!”

비슷한 영어 표현이 있다. “오케이 부머(OK Boomer)!” 25세의 뉴질랜드 의원이 의회 연설 중 자신의 발언을 방해하려는 나이 많은 의원을 향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심드렁하게 내뱉은 말이다. 그가 처음 만든 말은 아니고 지난 여름부터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말이다. 여기서 부머란 베이비붐 세대를 말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꼰대(또는 꼰데)’와는 다르다.

꼰대는 아버지 또는 나이 많은 남자 선생님을 뜻하는 은어다. 그 대상이 직장 상사에게까지 확장되면서 이제는 여자 꼰대도 생겨났다. 나는 정작 학교에 다닐 때는 꼰대라는 말을 쓰지 못했다. 타고난 모범생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선생님을 존경하지는 못할지언정 비속어로 된 멸칭으로 부를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모범생에게는 꼰대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많이 보인다. 그 꼰대들이 내 동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도 꼰대가 되어 있을 거라는 불안감이 커졌다.

이 와중에 이름만 보면 한국일보 자매지처럼 보이는 ○○일보의 논설위원이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란 칼럼을 써서 화제다. 그는 칼럼 말미에 “다만 ‘늙은 꼰대가 타고 있어요’ 같은 스티커는 사양한다”고 했다. 그런 스티커로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이유가 있다. 논설위원은 18세부터 선거권을 주자는 게 싫단다. 특별한 근거는 없고 그냥 싫다고 한다. 이 정도면 그냥 꼰대에 불과하지만 그는 더 나간다. 투표의 4대원칙(보통·평등·직접·비밀)도 바꾸자고 한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기본원칙마저 무시한다. 이 정도면 그냥 꼰대라고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아는 한국어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부머인 내가 “오케이 부머”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번에 배운 말을 쓴다. “바 험벅!”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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