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의 역설… 정부가 옥죌수록 “공급 부족 우려” 집값 더 올라

입력
2019.12.26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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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돌아보는 2019 경제] <하> 되살아난 부동산 망령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 연합뉴스

2019년 부동산 시장에선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와 버티려는 시장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결과는 정부의 ‘완패’. 지난해 9ㆍ13 부동산 대책으로 한동안 짓눌려 있던 집값은 올 여름부터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와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과열되기 시작해 지금은 수도권 주요 지역까지 불길이 확산됐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 일변도 처방이 오히려 화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정부 규제가 ‘공급 부족 우려’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결국 잘못된 진단은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가 됐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시장 내성만 키웠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지난 16일 세제ㆍ대출ㆍ청약제도를 총망라한 규제를 또 다시 내놨다. 이에 대한 평가는 해를 넘기게 됐다.

 ◇서울 집값 6월부터 다시 들썩 

25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들어 12월 셋째주(16일 조사)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작년 말에 비해 0.03% 하락했다. 최근의 급등세를 감안하면 느낌이 사뭇 다른 수치다. 이는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집값이 약보합권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대출 억제로 돈줄을 죈 정부 대책에 주택시장은 한동안 얼어붙었다.

그러나 6월부터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분양가상한제’ 카드를 처음 언급했다.

하지만 김 장관이 처음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전문가들은 “시장 가격을 통제하는 ‘극약 처방’은 공급을 옥좨 집값을 더 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새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 거란 예상에, 청약시장이 들끓기 시작했다. 청약 당첨 가점은 60~70점대까지 치솟았다. 급기야 청약 가점이 중ㆍ장년층보다 떨어지는 30대는 ‘청포자’(청약 포기자)를 자처하며 기존 아파트 구입으로 눈을 돌리면서 부동산 시장 전체가 들썩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저작권 한국일보]월별 아파트 매매가 증감률.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월별 아파트 매매가 증감률. 송정근 기자

 ◇부메랑 된 분양가상한제 

다시 찾아온 초저금리 환경도 정부 부동산 정책에는 악재였다. 한국은행은 7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사상 최저 기준금리 시대를 열었다. 뚝 떨어진 금리만큼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면서 소비자들은 대출을 통한 ‘주택 쇼핑’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당초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분양가상한제는 부작용도 없지 않다”며 우려를 표했지만 김현미 장관은 흔들림이 없었다. 국토부는 지난달 강남 4구 등 서울 27개 동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지역으로 묶었다.

그럼에도 집값은 계속 올랐다. 집값을 부추기는 공급 부족 심리를 정부 규제가 자극한 것이다. 시장은 이를 ‘규제의 역설’이라 부른다. 여기에 자사ㆍ특목고 폐지, 대입 정시 확대 등 교육제도 개편 영향까지 가세하면서 대치동과 목동 등 학군 인기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 불길이 더 치솟았다.

정부가 서울 집값 옥죄기에 나서자 지방 주택시장도 들썩였다. 대전 아파트값은 올해에만 7.41% 올랐다.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부산도 지난달 이후 매주 0.10~0.19%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단기 효과조차 보지 못한 채 시장을 완전히 망쳤다는 비판까지 받는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정부의 가격규제 정책이 시장을 왜곡하고 그 부작용으로 집값이 오르고 있는데 정작 정부는 이를 과열로 진단해 계속 잘못된 처방을 하고 있다”며 “한계가 많은 대책은 시장경제 시스템을 망가지게 하고 중장기적으로 집값 불안을 더 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내년 집값은 12ㆍ16 대책에 달려 

정부는 지난 16일 강도를 더 높인 규제 대책을 발표했다. 기습적으로 발표한 12ㆍ16 대책을 통해 종합부동산세율을 높이고 투기과열지구 등지에서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를 구입할 때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등 초강력 수요 억제책을 내놓았다.

처음엔 동별로 지정했던 분양가상한제도 12ㆍ16 대책을 통해 서울의 웬만한 지역을 모두 묶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고강도 대책이기에 시장에 미칠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수 전문가들은 서울 집값이 내년에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강력한 대출 규제로 투자 수요는 줄고, 종합부동산세 강화로 다주택자들이 물량을 내놓으면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에서 어느정도 효과를 낼 거라는 예측 때문이다.

하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내년 서울 주택시장은 단기적으로는 조정을 받을 수 있고 올해 하반기보다 상승폭이 둔화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도 있어서 집값 상승 요인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규제를 피한 지역에선 ‘풍선효과’가 나타날 거란 관측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고가주택 밀집지역은 당분간 조정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저가 아파트 단지에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서울도 지역 간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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