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청바지로 환경 살리며… 자원도 경력도 ‘업사이클링’

입력
2019.12.23 04:40
수정
2019.12.23 18:0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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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사랑의열매 공동기획 ‘나눔이 세상을 바꾼다’] <4> 경력단절 주부에서 환경활동가로

장채원(오른쪽)씨와 성유정 사회복지사가 20일 화성 동탄치동천사회복지관에서 장씨의 작품 ‘나만의 투피스’ 와 ‘전곡항’을 소개하고 있다. ‘나만의 투피스’는 버려진 청바지와 양말목을 활용해 새롭게 디자인한 작품으로, 2019 새활용 패션디자인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신혜정 기자
장채원(오른쪽)씨와 성유정 사회복지사가 20일 화성 동탄치동천사회복지관에서 장씨의 작품 ‘나만의 투피스’ 와 ‘전곡항’을 소개하고 있다. ‘나만의 투피스’는 버려진 청바지와 양말목을 활용해 새롭게 디자인한 작품으로, 2019 새활용 패션디자인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신혜정 기자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이란 아들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실패할까 봐 고민할 시간에 일단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올 한해 장채원(45)씨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올해 초만 해도 ‘업사이클링(Up-cycling)’이 무엇인지 자세히 몰랐었지만, 올 가을에는 학생들과 주민들을 상대로 업사이클링 방법을 가르치는 환경운동가가 됐다. 디자인은 물론 미술 교육도 받은 적이 없는 그가 만든 옷이 현직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제치고 지난달 열린 ‘2019 새활용 패션디자인 공모전’ 수상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경력단절 12년. 장씨가 주부로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결혼 전 직장경력 10년보다 길어졌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해도 ‘사회에서 날 받아줄까’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올해 업사이클링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깜찍하고도 의젓한 한 마디, 그리고 화성 동탄 치동천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한 ‘녹색 환경 UP!! 우리 삶도 UP!!’ 프로젝트 덕분이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복지관의 이번 프로젝트는 경력단절 여성을 환경운동가로 육성해 지역의 환경보호 의식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경력단절 여성을 참가자로 선정한 건 생활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온 주부들이 업사이클링을 실천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진 제품을 단순히 재사용하는 것을 넘어 디자인이나 기능을 추가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폐현수막을 이어 붙여 독특한 디자인의 가방으로 만드는 등 환경보호와 가치창출을 동시에 실천하는 것이 그 예다. 프로젝트는 특히 환경보호 활동을 통해 여성들의 단절된 경력까지도 ‘업사이클링’ 한다는 취지도 있다.

청바지를 재활용해 만든 컵홀더. 화성 동탄 치동천사회복지관 제공.
청바지를 재활용해 만든 컵홀더. 화성 동탄 치동천사회복지관 제공.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업사이클링에 관심있는 여성 21명이 금세 모였다. 참가자들은 복지관 근처에 있는 치동천로 카페마을에서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한해 커피소비량은 353잔. 커피를 담는 일회용 컵은 물론 여기에 항상 딸려오는 컵홀더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로 남는다.

참가자들은 카페마을 카페에 일회용품 사용 자제를 요청하기로 했다. 대신 일회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청바지 컵홀더를 보급하기로 했다. 지역 세탁소나 수선집, 헌옷수거함 등에서 버려지는 청바지를 구해 3개월간 1,000개의 컵홀더를 손수 제작했다. 재봉틀 사용법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 튼튼한 컵홀더를 완성하기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10곳의 카페가 일회용품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정을 했고, 장씨의 업사이클링 제품 제작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사업 소개-박구원 기자/2019-12-22(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사업 소개-박구원 기자/2019-12-22(한국일보)

참가자들은 나아가 인근 중학교에 방문해 환경교육을 하고, 지역 축제에서 업사이클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민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참가자들은 성취감을 느꼈다. 장씨는 “오랜 경력단절로 나만의 색깔이 담긴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며 “프로젝트에서 해온 일 중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지만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눌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올해 마무리됐지만, 참가자들은 이제 환경활동가로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예정이다. 성유정 사회복지사는 “그동안 쌓아온 지역 내 환경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참가자들이 환경강사 등으로 활동하도록 돕는 등 경력을 확장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말했다.

화성=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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