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뉴욕시 재정 문제 해결… 펠릭스 로하틴 별세

입력
2019.12.15 17:18
수정
2019.12.15 19:0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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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별세한 펠릭스 로하틴이 지난 1976년 11월 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14일 별세한 펠릭스 로하틴이 지난 1976년 11월 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미국 재계의 거물이자 1970년대 뉴욕시 재정 감독 기구 의장을 맡아 ‘뉴욕 재건’을 이끌었던 펠릭스 로하틴이 14일(현지시간) 맨해튼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5년 가족들과 함께 나치 독일을 피해 프랑스와 모로코, 포르투갈, 브라질 등을 떠돌다 1942년 미국에 정착했다. 1949년 미들버리대 졸업 후 투자은행 ‘라자드 프레레스’에 입사해 제너럴일렉트릭의 RCA 인수(1986)와 RJR 나비스코 인수(1988), 소니의 컬럼비아 영화사 인수(1989) 등을 주도했다.

1968~1972년 뉴욕증권거래소 위기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1975년에는 주정부가 임명한 뉴욕시 도시지원협의회 의장을 맡아 1970년대 바닥 상태였던 뉴욕시의 재정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종전까지 무료였던 뉴욕시립대 수업료를 신설하는 등 과감한 개혁으로 흑자 재정의 기반을 닦아 한때 ‘뉴욕의 구세주’로 불렸다.

주프랑스 미국대사와 리먼브라더스 국제자문휘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2010년 1월 라자드 회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생전 “난 부러진 곳을 잇고, 망가진 곳을 고치며, 출혈 흔적을 최소로 남긴다”고 말하며 자신을 외과의사에 비유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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