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너와 나’ 음반 낸 루시드폴 “공존을 고민했으면”

입력
2019.12.16 0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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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부터 밥 먹을 때 그릇 달각거리는 소리까지. 가수 루시드폴은 반려견 보현이 내는 소리를 타악기처럼 새 앨범 ‘너와 나’에서 사용했다. 안테나뮤직 제공
개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부터 밥 먹을 때 그릇 달각거리는 소리까지. 가수 루시드폴은 반려견 보현이 내는 소리를 타악기처럼 새 앨범 ‘너와 나’에서 사용했다. 안테나뮤직 제공

지난 10일 서울 신사동 안테나뮤직 사옥. 가수 루시드폴(조윤석ㆍ44)은 인터뷰 자리에 큰 귤 3개씩 담긴 봉투를 내놨다. 직접 기른 귤을 맛보라고 준 선물이었다.

제주에서 3,300㎡(1,000평) 규모의 과수원을 운영하는 가수에게 농사는 생업이다.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귤 얘기로 흘렀다. ‘귤 맛이 좋다’는 말에 자식 칭찬 들은 부모 마냥 기뻐했고, 유기농 재배 얘기가 나오자 학자처럼 진지해졌다. “유기농으로 기르면 여름에 난 순(筍)을 잘 못 지켜요. 병충해에 약하니까요. 당연히 수확량은 줄죠. 나무 한 그루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재배하고 그걸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루시드폴은 영락없는 농부였다.

16일 루시드폴은 9집 앨범 ‘너와 나’를 내놨다. 2017년 10월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이후 2년 2개월 만이다. 제목 속의 ‘너’는 루시드폴의 반려견 보현이를 가리킨다. 10년 동안 보현이와 함께 살아온 루시드폴은 반려견과 사람의 공존을 주제로 앨범을 꾸렸다.

루시드폴과 그의 반려견 보현이(오른쪽). 안타네뮤직 제공
루시드폴과 그의 반려견 보현이(오른쪽). 안타네뮤직 제공

2014년 결혼 후 제주로 내려가 자연과 더불어 산 그에게 ‘공존’은 늘 삶의 화두였다. 루시드폴은 앨범 작업 과정을 “인간이 반려견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란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너와 나’에서 나보다 너를 앞세운 것은 반려견이 앨범의 주인공이란 뜻. 앨범엔 ‘아이 윌 올웨이즈 웨이트 포 유’란 곡도 있는데, 이 또한 반려견 입장에서 기다림에 대해 노래한 곡이다.

앨범에서 반려견은 단순히 이야기 소재로만 쓰이지 않는다. 루시드폴은 보현이가 내는 다양한 소리를 ‘악기’로 활용했다. ‘콜라비 콘체르토’에는 보현이가 콜라비를 먹을 때 나는 소리가 들어갔다. ‘뚜벅뚜벅 탐험대’에는 보현이가 짖어대는 소리를 썼다. ‘너와 나’는 ‘보현 연주, 루시드폴 작곡’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이 “보현이와 나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말했다.

‘너와 나’엔 보현이 소리만 있는 게 아니다. 제주의 바람, 비, 새, 파도 소리가 가득하다. 루시드폴이 제주 곳곳에서 직접 채집한 소리다. 앨범을 여는 첫 곡 ‘산책갈까?’에선 마른 낙엽을 밟는 사각사각 소리가 더없이 포근하다.

일상에서 만나는 주변의 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곡에다 녹였다. 지난해부터 부쩍 음향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농사 짓다 왼손 약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두 달 여 동안 기타를 연주할 수 없게 된 것이 계기였다.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 작업을 통해 음악인으로서, 자연인으로서 세상을 듣는 귀와 마음을 활짝 여는 값진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요즘 루시드폴의 관심은 안타깝게도 ‘굉음’이다. 과수원 주위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공사 소음이 계속된 탓이다. 2016년 처음 과수원을 얻었을 때만 해만 천국이었는데, 이젠 꼭 그렇지 만도 않다. 해가 지날수록 과수원 옆 밭들이 포크레인으로 갈려 나갔고, 숲은 사라졌다.

“중장비 소음이 처음엔 몸서리치도록 싫었어요. 그 오염된 소리를 채집해 다음 앨범에 활용해볼까 싶어요. 개발의 피로에 대한 치유를 위해서요.” 제주를 휩쓴 개발 광풍은 ‘음악 농부’의 삶도 흔들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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