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성 칼럼] ‘김진표 논란’ 유감

입력
2019.12.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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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5회 한중 공공외교 평화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검토하고 있다. 뉴시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5회 한중 공공외교 평화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검토하고 있다. 뉴시스

평생 민주당을 지지해온 친구가 있다. 대기업 전무를 하다가 소프트웨어 중견 기업의 부회장으로 옮겨 몇 년째 처절하게 뛰고 있는 일벌레다. 좀처럼 내심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요즘 다혈질로 변했다.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회사가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달리고 싶은데 발목 잡는 잡초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몇 달 전 하루 두 차례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낮엔 조달청장 주관 간담회, 저녁엔 청와대 경제보좌관 주재 간담회였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애로를 말하는 자리였다. 오후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은 전임 조달청장에게 건의한 내용을 그대로 다시 얘기했다. 그리고 저녁 간담회에서도 똑같은 얘기가 오갔다. 화가 나서 ‘간담회만 하면 뭐하냐. 건의하면 바뀌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저녁 6시 불 꺼지는 연구소로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었던 70대 초반의 콘텐츠 기업 회장이 있다. 그 기업은 교육 콘텐츠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에 올랐고, 이제 해외로 나가려 한다. 크지 않은 기업이지만 우수 인재들을 영입,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 연구소가 요즘 저녁 6시면 불이 꺼진다. 주 52시간제를 어기면 대표이사가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고서 우리가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라고 탄식했다.

대기업 대표로는 드물게 문 대통령을 좋아하는 60대 초반의 지인이 있다. 입만 열면 나라 걱정이다. 그는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예로 들며 발상의 전환을 주문한다.

“지소미아 종료 유예에 국민들이 비겁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이 얼마나 고심을 했겠느냐고 안쓰러워했다.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됐다. 선의로 추진했지만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정책들을 과감히 수정하자. 40년 전 학창 시절 최인훈의 ‘회색인’을 탐독하면서 선명하지 못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국가나 기업을 운영하는 데는 지혜로운 회색인의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문재인 지지층엔 진보 외에 중도도 많고 보수도 있어

이들의 고언을 장황하게 전하는 이유는 문 대통령 지지세력이 모두 진보는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중도도 많고, 보수도 있다고 본다. 더욱이 대통령은 지지 세력을 넘어 국민 전체를 보고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그것은 당위이자 의무다.

그런 관점에서 ‘김진표 논란’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이낙연 총리 후임으로 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유력하게 거명되자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이 반대했고, 그러자 청와대가 재검토하게 됐다는 것이다. 반대 논거는 김 의원이 종교인 과세를 막았고, 노무현 정부의 경제부총리 시절 법인세 인하,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결정했고, 한미FTA를 성사시켰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반개혁적이고 대기업과 외국자본의 앞잡이라는 것이다.

그런 정서가 있을 수는 있다. 일부 종교인들이 성폭행, 저급한 정치선동, 세습 등으로 지탄을 받는 현실에서 종교인 과세를 반대했다니 화가 날 법도 하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일부 대기업의 갑질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으니 법인세 인하도 마뜩지 않을 수 있다.

김진표 거부 논리, 모순적이고 협소하다

차분하게 따져보자. 종교인 과세는 지난 대선 때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 모두 유보 입장을 취했다. 당위보다는 종교인 표를 의식한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심상정 의원을 빼고 모두 공직을 맡지 말라는 말인가. 법인세 인하는 정책 수단일 뿐이다. 경기에 따라 올릴 수도, 낮출 수도 있는 것이지, 금기는 아니다. 한미FTA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너무 유리하다며 파기를 주장했을 정도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기업 친화적이라는 부분도 비난 대상이 아니다. 기업 없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는가, 소득이 늘어날 수 있는가.

무엇보다 한심한 것은 ‘김진표 논란’이 스스로를 부인하는 모순임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김 의원은 민주당 공천으로 4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로 발탁됐다. 총리 자격이 없다면 민주당 공천은 무엇이며, 그를 발탁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인가.

중도 목소리를 반영하는 인사가 이루어져야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청와대의 재검토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 좁은 안목의 일부 지지세력에 문 정부가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표 의원이 최적의 카드는 아닐 수 있지만, 이념적 비난의 희생물일 수는 없다.

최근 이 정부의 핵심인 이동걸 산업은행 총재조차 “생산직 노조가 호봉제 유지하면서 정년연장을 하면 대한민국 제조업은 다 망한다”며 “연봉 1억원을 받으면서 못 살겠다고 임금투쟁을 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찍었던 많은 사람들이 저녁에 모이면 나라 걱정을 한다. 이제 선한 의도만 강조할 게 아니라 선한 결과가 나오도록 혁신적이고 실력있는 경제정책 수행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다. 이런 중도의 목소리도 들었으면 한다. 혹시 오해할까 봐 한마디 덧붙이면, 김진표 의원을 만난 지는 10년도 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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