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입력
2019.12.16 04:40
29면
김원봉.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원봉. 한국일보 자료사진

의열단약산김원봉장군기념사업회가 11월 9일 창립됐다. 참석자 모두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의 삶을 재조명하고 사업회 창립의 의미를 새겼다.

창립식에서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기념사업회가 앞장서 진보적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고 선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약산은 독립을 위해 힘쓴 순수한 민족주의자”라고 거듭 주장했다.

다음 날인 11월 10일은 의열단 창단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신흥무관학교 항일정신으로 의기투합해 발족한 의열단은 다른 항일 무장단체의 산파 역할을 했다. 의열단장인 약산 김원봉은 조선의용대장, 광복군 부사령관, 임시정부 국방장관 등 30여년간 독립운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럼에도 해방 후 월북하는 바람에 서훈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온갖 오해를 받았다.

그 오해 중 하나가 “김원봉은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는 것이다. 같은 시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으로 김원봉과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 있었던 점도 혼동을 부추겼을 것이다. 하지만 임시정부를 담당했던 미 전략국 소속 클래런스 윔즈와 미 군정청 역사편수관 리처드 로빈슨은 약산을 각각 “실용적 좌파 민주주의자”와 “공산당 가입을 거부한 좌파 민족주의자”로 보고서 등에 명시한 바 있다. 북한 주재 소련대사였던 알렉산더 푸자노프는 “약산은 북에서 조선노동당에 결코 가입한 적이 없다”고 일지에 적시했다.

현재 우리 학계도 약산이 민족주의를 뿌리로 삼으면서 사회주의 혹은 무정부주의를 자양제 삼아 민족주의를 내실화한 ‘실용적 진보 민족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번째 오해는 “김원봉이 설립한 조선의용대가 한국전쟁 당시 남침의 선봉대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조선의용대가 1938년 10월 중국 우한에서 김원봉이 주도가 돼 97명으로 창설된 것은 맞다. 하지만 이후 조선의용대 대원 다수가 중국공산당이 통제하는 화북 타이항산 지역으로 북상해 1941년 7월 7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편성된다. 이들은 이듬해 5월 일본군의 대소탕전에 맞서 싸우는데 이때 윤세주, 진광화 등이 사망한다. 그러나 이 무렵 김원봉과 조선의용대 총본부의 40여명은 타이항산으로 북상하는 대신 충칭으로 건너가 좌우 항일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된다. 화북지대에 대한 김원봉의 영향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거의 소멸한다. 한편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1942년 7월 10일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로 재편성되고 마오쩌둥이 김무정을 사령관으로 임명함으로써 중국공산당 팔로군 산하로 탈바꿈한다. 따라서 한국전쟁 당시 남침의 전위대로 활동한 김무정의 조선의용군은 김원봉의 조선의용대와 관련이 없다.

세 번째 오해는 “김원봉이 북한을 추종해 자진 월북했고 조선인민군 창설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약산의 월북은 미군정하의 좌익 정치활동 금지와 극우 백색테러, 친일형사 노덕술의 고문과 살해 위협, 좌우합작 운동의 실패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뤄진 측면이 있다. 약산으로부터 “남한 정세가 나빠 월북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은 중국인 비서 스마루와 의열단 동료 유석현, 김승곤 그리고 독립운동가 정정화와 황용주 전 MBC 사장 등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게다가 김원봉은 1948년 4월 9일 월북했는데 북한의 조선인민군은 2개월이나 앞선 그해 2월 8일 공식 창설됐다. 따라서 약산이 인민군 창설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낭설이다.

약산이 한국전쟁 전후 북한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자료는 아직 발견된 게 없다. 다만 전쟁 당시 그가 북한에서 한직이라도 고위직(검열상, 노동상)을 지냈다는 점에서 도의적 책임과 비난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제는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해 약산의 독립운동 공적은 공적대로, 월북 이후의 과오는 과오대로 평가하면서 그를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정원식 연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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