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다 번역가 누구인지 궁금해” 대체 불가 번역자의 힘

입력
2019.11.29 04:40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예심] 번역 부문 10종

“그 번역자가 없었다면 한국에 소개될 수 없는 책이다.” 번역가는 보통 책에 가려져 조연으로 밀려나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책보다 번역가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작품이 많았다. 중국정치사상사 통권을 최초로 번역한 장현근 교수와 폴란드어 문학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 온 최성은 교수에 대한 찬사와 격려가 이어졌다. 한국진화생물학계 연구자들의 역량을 결집시킨 다윈 선집 시리즈는 앞으로의 작업이 기대된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 상황에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들도 꼽혔다. ‘종전의 설계자들’은 태평양전쟁 종결 과정에서 비틀어진 한반도의 운명을 곱씹어 보게 했고, ‘맹자-마음의 정치학’도 정치의 역할을 되새기는 데 유용한 텍스트란 평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름다움의 진화, 몽유병자들, 동방의 부름, 언더그라운드 등 국내 저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관점의 책들을 만나게 해준 것도 번역의 값진 성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윌터 아이작슨 지음ㆍ신봉아 옮김ㆍ아르테 발행

시대를 초월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든 창의력의 비밀이 무엇인지 파헤친다. 20년 간 시사주간지 타임 편집장으로 일한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이 다빈치가 남긴 7,200쪽 분량의 노트에 적힌 기록과 낙서를 연구해 그의 작품과 삶을 아우른다. 다빈치를 천재로 만든 건 끈질긴 호기심과 혁신을 향한 노력이었다는 힘 있는 메시지가 책을 관통한다.

▦중국정치사상사(3권)

류쩌화 지음ㆍ장현근 옮김ㆍ글항아리 발행

수천 년을 이어온 중국의 정치 사상을 개괄한 대작이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분량부터 방대하다. 1권이 1,320쪽, 2권이 1,208쪽, 3권이 1,524쪽. 모두 4,052쪽에 달하는 ‘역대 급’ 벽돌책이다. 중국정치사상사 통권이 한국에 번역 소개된 것도 처음이다. 국내 동양사상학계를 이끌어 온 저자가 ‘나 홀로’ 2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종전의 설계자들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ㆍ한승동 옮김ㆍ메디치미디어 발행

태평양전쟁 종결의 배후와 일본의 항복 과정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가 일본의 백기 투항을 끌어냈다는 사학계 통설과 달리, 소련의 뒤늦은 참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이어졌다는 새로운 분석을 내놓는다. 20세기 전후 질서를 만든 각축과 암투가 매끄러운 문장을 타고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아름다움의 진화

리처드 프럼 지음ㆍ양병찬 옮김ㆍ동아시아 발행

자연선택을 맹신해온 이들에게는 불편함을 안겨줄 발칙한 문제작이다. 30년 간 세계 곳곳에서 새들을 관찰해온 저자는 찰스 다윈의 잊힌 이론인 ‘성 선택’을 전면에 내세운다. 크게 쓸모 없어 보이는 ‘아름다움’이 실은 종족의 번식을 떠받치고 진화를 추동하는 힘이란 설명이다. 성적 자기결정권 확보 노력도 바람직한 진화의 과정이라 풀이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지음ㆍ다윈 포럼 기획ㆍ장대익 옮김ㆍ최재천 감수ㆍ사이언스북스 발행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이끄는 다윈포럼이 기획한 다윈 선집 시리즈 ‘드디어 다윈’ 의 첫 책이다. 다윈의 주요 저작의 번역 정본을 만들기 위해 한국진화생물학계 연구자들을 끌어 모았다. 지금까지 ‘종의 기원’ 국내 번역서는 마지막 저작인 6판을 옮긴 게 대부분이었다. 이번 작업은 초판을 번역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ㆍ최성은 옮김ㆍ민음사 발행

2018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이다. 100여편이 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록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최성은 한국외대 교수는 토카르추크의 전작인 ‘태고의 시간들’도 번역한 토카르추크 전담 ‘마크맨’이다.

▦몽유병자들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ㆍ이재만 옮김ㆍ책과 함께 발행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과 배경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특정 개인, 한 국가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전쟁을 불러온 주요 행위자들의 결정을 시간 순으로 따라가는 접근법을 택한다. 1차 대전을 일으킨 건 상대를 향한 신뢰 부족, 지도부의 숱한 오판이었다. 2017년 평양을 방문한 유엔 사무차장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이 책을 건네 화제가 됐다.

▦언더그라운드

윌 헌트 지음ㆍ이경남 옮김ㆍ생각의 힘 발행

버려진 지하철, 성스러운 동굴, 지하 묘지, 핵 벙커 등 땅 아래만 자꾸 찾아 들어가는 ‘지하 마니아’의 이야기다. 늘 위만 쳐다보며 살아가는 인류는 지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저자는 발 밑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초월적 가치, 미지의 가능성을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맹자, 마음의 정치학(3권)

배병삼 지음ㆍ사계절 발행

30년 동안 유교 고전을 정치학적 관점에서 읽고 해석하는 작업을 해온 저자가 ‘맹자’ 완역과 주석, 해설을 담았다. 3권 전체 1,8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이다. 맹자는 사람다운 정치,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이상적 사회상으로 제안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맹자를 정치적 텍스트로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동방의 부름

피터 프랭코판 지음ㆍ이종인 옮김ㆍ책과함께 발행

서유럽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해 세계사를 살펴온 저자가 기존의 십자군 전쟁사에서 등한시되어왔던 동방 세계에 주목한다. 풍부한 동서방 사료와 최신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십자군전쟁이 어떻게 일어났고 전개되었는지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속내와 그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풀어낸다.

한국일보 뉴스 네이버 채널 구독하기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