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 칼럼] 과연 댓글 창 자체가 문제인가

입력
2019.11.28 18:00
언론사가 내놓은 글들을 그저 수용하고 개인적으로 호불호를 표현할 뿐 의견을 낼 수 없었던 대중들이 이제는 댓글 창을 통해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댓글 창이 있어 대중들은 보다 쉽게 자신의 생각들을 내놓을 수 있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른바 ‘대중의 시대’라고 불러도 될 만큼 이제는 대중의 힘이 세졌다. ©게티이미지뱅크

2011년 방영된 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한석규)과 정기준(윤제문)은 한글 창제 찬반을 두고 이른바 ‘끝장토론’을 벌인다. 세종은 삼봉 정도전의 이야기를 빌어, 간관이 없던 요순시대에는 천인에 이르기까지 간하지 않은 자가 없었지만, 간관이란 직책이 생기면서 오히려 언로가 막히고 백성들이 위정자에게 간할 방법이 없어졌다며 이렇게 말한다. “나의 글자로서 언로가 아닌 자로(字路)를 열려 한다. 간관을 통한 소통이 아니라 글자로서 직접 소통하려 한다.” 여기서 간관은 지금의 언론기능에 해당한다. 세종은 글을 독점한 사대부들의 욕망과 기득권을 견제하기 위해 백성이 글을 알게 하고 권력을 나눠 새로운 균형과 조화를 만들 것이라고 선언한다.

‘뿌리 깊은 나무’가 세종의 한글 창제와 반포가 가진 의미를 단지 ‘편의성’만이 아닌 권력 견제의 문제로 해석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당시 이 작품을 쓴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세종의 한글 창제와 이를 반대하는 정기준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통해 당시 막 피어나고 있던 인터넷 문화에 대한 담론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기성의 일방향적인 미디어들에서 이제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생겨나는 변화들. 거기에 대한 찬반양론이 사실상 세종과 정기준의 ‘끝장토론’에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제로 작가들은 찬반 역할을 나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세종의 논리가 워낙 명쾌해서 반대편 정기준의 논리를 세우는 게 만만찮았다는 작가들은, 나치의 선전선동을 이끈 괴벨스에서 그 논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했다.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권력이 대중의 흔들리는 영혼을 조율해야 한다”고 했던 괴벨스. 그런 대중들에게 글을 알게 한다는 건 극도로 위험한 일이라는 논리를 세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정기준에게 부여했던 것이다.

이 논리를 통해 끝장토론이 흥미로워진 건 세종이 꺼내든 ‘사대부의 욕망’에 정기준이 ‘백성의 욕망’이란 카드를 꺼낸다는 점이다. 그는 거대하고도 무서운 군중의 욕망을 이야기하며 그 욕망들이 한꺼번에 풀어지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라고 한다. 글을 알게 된 백성들이 지혜를 갖기 시작하면 저마다의 욕망을 갖게 되고 정치에 관여하려 할 것이라는 정기준의 대사 속에는, 이미 정치 또한 인터넷에 좌지우지되던 당시의 달라진 상황이 투영되어 있다. 인터넷은 그렇게 권력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대중 쪽으로 다시 기울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접하게 된 건 90년대부터다. 그로부터 약 30년 간 인터넷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가장 큰 변화는 쌍방향 소통으로 단지 소통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건 권력의 중심축이 바뀌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하나로 묶여지지 못했던 대중들의 목소리들이 하나로 묶여져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거대한 힘이 됐다는 의미다.

여기서 이 힘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댓글 창이다. 언론사가 내놓은 글들을 그저 수용하고 개인적으로 호불호를 표현할 뿐 의견을 낼 수 없었던 대중들이 이제는 댓글 창을 통해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댓글 창이 있어 대중들은 보다 쉽게 자신의 생각들을 내놓을 수 있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른바 ‘대중의 시대’라고 불러도 될 만큼 이제는 대중의 힘이 세졌다. 이제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일반화된 시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이 내세운 논리처럼 이렇게 커진 대중의 힘이 항상 순기능만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고인이 된 설리와 구하라로 인해 ‘댓글 규제’에 대한 논쟁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악성 댓글의 문제는 이미 우리가 둔감하게 느끼는 것이 일상화됐을 정도로 심각하다. 거대해진 대중의 욕망과 힘이 자칫 폭력으로도 바뀔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 포털 다음은 연예 뉴스 댓글 창을 닫아버렸다. 기성 언론들은 앞 다퉈 ‘악성 댓글’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뉴스들에는 CNN에서는 댓글 창을 폐지하고 SNS로만 독자의견을 받으며, BBC는 일부 기사만 감독 과정을 거친 댓글 게시를 허용하고, 뉴욕타임즈는 전체 기사의 10% 정도만 기사 표출 이후 24시간 동안 제한적으로 댓글을 허용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제 연예 뉴스만이 아니라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 제도를 아예 폐지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그런데 과연 최근 연예계의 안타까운 소식이 댓글 창 자체의 문제 때문인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은 누군가의 사생활까지 파고드는 언론이 더 문제는 아닐까. 댓글 창의 본래 기능은 쌍방향 소통이고, 그것은 권력의 균형 또한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댓글 창을 어떻게 본래 기능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 그 자체를 없애려는 건 일방향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고픈 기득권자들의 욕망일 수 있으니 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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