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사실상 필리핀 전력망 장악해 언제든 무력화 가능”

입력
2019.11.26 17:14
수정
2019.11.26 20:5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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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필리핀 의회 보고서 입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5일 오후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뉴스1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5일 오후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뉴스1

중국이 필리핀의 전력망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 이론적으로는 언제든 원격으로 이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두 나라 간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는 만큼 향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 CNN방송은 25일(현지시간) 필리핀 상원을 위해 작성된 내부 보고서를 입수, 중국 최대의 전력 국영기업인 국가전망유한공사(SGCC)가 필리핀 민간 송전사업자인 필리핀 전국송전사(NGCP)의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보고서는 “중국 엔지니어들만이 NGCP 핵심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있다”며 “필리핀 전역의 전력망이 사실상 중국 정부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09년 필리핀 전체 가구 78%에 전력을 공급하는 NGCP가 민영화되자 중국 측은 지분을 대거 매입하면서 운영 인력까지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NGCP 시스템의 화웨이 기술 의존도가 높아졌고, 일부 매뉴얼은 중국어로만 제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필리핀 엔지니어 중 시스템 운영 자격을 갖추거나 교육을 받은 사람은 전무하다”고 덧붙였다.

이달 초 내년도 에너지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를 포착한 필리핀 상원은 정부에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했다. 리사 혼티베로스 상원의원은 “최근 중국의 패권 추구 행태를 보면 이는 국가 안보를 중대한 위협에 빠트릴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셔윈 가찰리안 상원 에너지위원회 위원장도 “버튼 하나로 각 가정과 직장, 심지어는 군사시설의 전력까지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통제를 강화해 우리가 직접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중국이 필리핀 전력망을 차단하거나, 이를 시도한 증거가 나온 적은 없다. 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밀착하면서 양국 간 관계가 원만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CNN은 아직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친중 행보에 대한 비판여론도 높아 긴장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황당하단 반응이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필리핀은 중국의 중요한 이웃이자 파트너”라며 “양국의 협력과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중국 기업의 합법적 필리핀 진출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필리핀 국민도 양국 기업의 협력을 열린 마음과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바라보길 바란다”면서 “지나친 걱정으로 사실을 날조해선 안 된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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