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 해상케이블카로 용틀임처럼 휘감겨 오는 섬…섬…섬…

입력
2019.11.26 18:00

[자박자박 소읍탐방]<44>용틀임하는 섬, 목포 고하도

목포해상케이블카 유달스테이션에서 고하도스테이션으로 이동하면서 본 풍경. 용처럼 길게 휘어진 고하도는 거센 파도로부터 목포를 지켜주는 천연 방파제다. 목포=최흥수 기자

목포는 항구다. 육지와 연결하는 해상 교량이 늘면서 사정이 달라지고 있지만, 천사(1004) 개나 된다는 신안의 섬으로 가는 출발점은 여전히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이다. 사람도 물자도 목포항에 모였다 흩어진다. 목포 앞바다에 흔한 게 섬이고 제각기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 다도해국립공원이라 불린다. 하지만 정작 행정구역상 목포시에 속하는 유인도는 6개에 불과하다. 가장 가까운 고하도는 목포의 자연 방파제 같은 섬이다.

해질 무렵 노을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목포해상케이블카로 연결로 변신하는 고하도

고하도(高下島)는 높은 산(유달산, 228m) 바로 아래 있는 섬이라는 의미다. 용처럼 길쭉하게 목포항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용머리라고도 불린다. 덕분에 목포 내항은 강물처럼 잔잔하다. 목포 앞바다에서 고하도까지 가까운 곳은 직선 거리 1km도 되지 않는다. 섬 주민 중에는 뱃삯을 아끼려고 헤엄을 쳐서 건너는 이들도 있었다 한다.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고하도는 2012년 6월 목포대교가 개통하면서 진작에 섬 신세를 면했다. 지난 9월에는 목포해상케이블카가 개통해 새로운 관광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목포해상케이블카에서 고하도 북측과 목포대교 풍경. 산등성이로 난 둘레길은 판옥선 모양의 전망대에서 해안산책로로 이어진다.
북항스테이션에서 유달스테이션으로 이동하는 동안 오른편으로 유달산 정상의 기암괴석이 펼쳐진다.
유달달 반대편으로는 목포 구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3,230m(해상 820m, 육상 2,410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북항스테이션(정거장이라는 말 대신 굳이 ‘스테이션’이라 이름 붙였다)에서 출발해 유달산 정상 부근의 유달스테이션을 지나 고하도스테이션까지 약 20분이 걸린다. 육상 구간을 지날 때는 목포 구도심이 까마득하게 펼쳐지고 유달산의 기암괴석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높이 155m에 이르는 주탑을 통과할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아찔하다. 지난해 이맘때 온금동 마을 뒤편에 까마득하게 솟은 탑을 보고 흉물이라 여겼는데, 막상 고공에 매달린 케이블카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풍광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으니 사람 마음이 이토록 간사하다. 이용 요금은 성인 왕복 2만2,000원이다.

고하도에 도착하면 정거장을 중심으로 좌우로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섬의 양 끝을 연결하는 ‘고하도 둘레길’로 전 구간을 왕복하면 약 6km, 2시간40분가량 걸린다. 먼저 섬 북측으로 길을 잡았다. 능선에 오르자마자 좁은 바다 건너 유달산과 산자락에 붙은 서산ㆍ온금동 마을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서산ㆍ온금동은 목포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주로 신안의 섬 주민들이 이주해 형성한 마을이다. 가난의 흔적이 짙게 밴 서산동의 좁은 골목은 최근 주민들의 애환을 구수한 사투리로 담은 ‘시화골목’으로 단장했다. 영화 ‘1987’을 촬영한 ‘연희네슈퍼’에서 출발해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올랐던 언덕배기에는 전망 좋은 카페도 들어서고 있다.

고하도 둘레길에서 본 유달산과 주변 풍경. 온금동 뒤편에 높이 155m의 주탑이 세워져 있다.
판옥선 12척을 겹쳐 놓은 모양의 고하도 전망대.
이달 개설한 해안산책로. 목포대교 아래 용머리까지 약 1km 거리다.
푸른 바다를 끼고 조성된 고하도 해안산책로.
해안산책로 끝에 은빛 용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섬 북측 해안을 따라 개설한 목재 산책로를 걷는 내내 유달산 풍경과 마주한다. 약 1km 해안 산책로 끝자락에는 은빛 용 한 마리가 세워져 있다. 꿈틀대며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형상이다. 조각은 기념 사진을 찍기 좋도록 산책로 쪽을 향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용틀임처럼 휘어진 섬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목포대교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해안 산책로 초입에는 전망대, 중간에는 이순신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전망대는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판옥선 12척을 겹쳐놓은 형상의 5층 건물이다. 1층의 카페를 시작으로 각 층마다 목포와 고하도의 역사, 목포의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층마다 창을 다른 방향으로 배치해 고하도가 품은 풍광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다.

◇임진왜란부터 세월호까지 역사의 아픔 서린 섬

케이블카 정거장을 기준으로 풍광은 북측 산책로가 뛰어나지만, 고하도의 역사를 품은 유적은 반대편 길에 몰려 있다. 섬 남측은 그나마 농사지을 땅이 있고, 30여가구의 마을도 이들 농경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이충무공 기념비가 세워진 곳은 아늑한 솔숲으로 아늑한 솔숲에 조성돼 있다.
이순신의 5대손이 세운 ‘이충무공 기념비’. 일제강점기 아랫부분이 훼손됐다.
이충무공 기념비 앞은 소나무 사이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된 유적도 행정구역상 목포시 달동에 속하는 섬 아래쪽에 있다. 고하도는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이 106일간 머물며 조선 수군을 재정비한 곳이다. 바다에서 목포 내항으로 이어지는 물길, 현재 목포대교가 세워진 해협을 통과하는 배에서 통행세를 받아 군량미 2만석을 비축하고, 판옥선 40척을 확보했다고 전해진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고하도에 대해 ‘서북풍을 막아 전선(戰船)을 감추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적었다. 보물 같은 섬, ‘보화도’라고도 썼다. 둘레 12km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호남의 곡창인 영산강 유역을 잃게 되니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섬 남쪽 끝자락 진성(鎭城)이 있던 자리에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722년 삼도수군통제사 오중주와 충무공의 5대손 이상봉이 세웠다. 이순신이 고하도를 전진기지로 선정한 경위와 인조 25년(1647) 진영을 당곶진(현 목포시 하당 일대)으로 옮긴 후 후대에게 고하도 진 터를 알리기 위해 비를 세운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비문은 남구만(1629~1711)이 지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시조를 지은 문인이다. 높이 227cm에 이르는 화강암 비석은 일제강점기에 야산에 버려진 것을 광복 후 현 위치에 세우고 비각을 씌웠다. 하단의 비문은 일제에 의해 훼손돼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비각으로 오르는 길 주변에는 아름드리 솔숲이 형성돼 있고, 뒤뜰에는 최근 심은 듯한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아담하고 그윽하다. 정면으로 보면 쪽빛 바다 뒤로 목포 시내 풍경이 아른거린다. 일종의 사당이나 마찬가지인데 엄숙하기보다 편안하게 쉬어가기 좋은 분위기다.

이충무공 기념비 인근 무화과 밭에 ‘육지면발상지’ 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의 수탈에 치를 떨었던 주민들에 의해 글자가 훼손돼 있다.
목화정원에 가면 열매 맺기 전의 ‘다래’와 솜 뭉치가 달려 있는 목화를 볼 수 있다.
고하도의 목화밭은 현재 대부분 무화과 밭으로 변했다.

충무공 기념비에서 직선 거리로 불과 100m 떨어진 비탈밭 한 귀퉁이에는 ‘조선육지면발상지지('朝鮮陸地綿發祥之地)’라 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육지면은 국수 면발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는 목화 품종이다. 미국이 원산지로 ‘Continental cotton’, 즉 대륙에서 건너온 면화를 가리킨다. 미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일본 영사 와카마쓰 우사부로(若松兎三郞)가 1904년 미국산 육지면을 들여와 처음으로 재배한 곳이 고하도다. 이곳에서 시험 재배에 성공한 육지면은 전국으로 보급된다. 결과만 놓고 보면 와카마쓰는 제2의 문익점이라 할 수도 있는데, 일제의 폭압적 수탈에 육지면 재배 30년을 기념해 세운 비석에는 고마움보다 분노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비석 후면의 글자는 해방 후 주민들에 의해 상당 부분 훼손돼 있다.

고하도 마을 초입에는 목화정원과 체험장이 있어 실제 목화를 볼 수 있다. 수확이 끝난 밭에는 뒤늦게 코스모스만 만발해 있지만, 비닐하우스 안에는 싱싱하게 열매를 맺은 목화가 자라고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에나 쓰는 인공 솜털이 아니라 뽀얗고 폭신폭신한 천연 솜 뭉치가 목화 대궁에 매달린 모습이 볼수록 신기하다. 목화는 세 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처음 하얗게 핀 꽃잎이 발그스름하게 변하고, 열매가 맺힌 꽃봉오리는 다시 하얀 솜 꽃을 세상에 내놓는다. 솜털로 변하기 전 봉우리는 ‘다래’라고 해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하얗게 목화 꽃이 피어나던 고하도의 비탈밭은 지금 온통 무화과 밭으로 변했다. 붉은 과육 안에 꽃을 숨긴 과일, 다디단 무화과는 희한하게도 맛과 모양이 목화 다래와 많이 닮았다.

일제강점기 고하도 해안에 판 동굴 진지. 20여개가 남아 있다.
동굴 진지 내부에서 본 모습. 길이 없어 여행객이 실제 가 볼 수는 없다.
동굴 진지 가는 길의 작은 해변에 굴 껍질이 하얗게 덮여 있다.
동굴 진지 가는 길 주변에 멀구슬나무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고하도 해안에도 일제 침략의 상흔이 짙게 남아 있다. 바다에서 보면 해안 바위 여러 곳에 구멍이 나 있다. 약 20여개가 남아 있는데 길이 없어 여행객이 가 볼 수는 없다. 고재석 목포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굴을 겨우 찾아 갔다. 입구는 지름 5m가 넘을 듯하고, 깊이는 20m 정도 될 듯하다. 어두 컴컴한 동굴에 파도에 쓸려온 쓰레기만 더러 보인다. 해안 동굴은 일제가 연합군 함정을 공격하기 위해 어뢰정을 숨긴 곳이다. 일제의 어뢰정 부대는 해상자살특공대에 비유된다. 명분 없는 전쟁에 내몰려 어두운 굴 속에서 죽을 날만 기다린 어린 군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굴 주변 해안엔 멀구슬나무 노란 열매가 늦가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목포신항만에 녹슬어 가는 세월호가 덩그러니 얹혀져 있다.
목포와 고하도 여행지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고하도 바깥쪽에는 현재 목포신항만 공사가 한창이다. 기존 섬보다 넓은 땅이 새로 생겼다. 마을에서 큰 도로로 나오면 멀리 목포 외항에 녹슬어 가는 세월호가 덩그러니 얹혀진 모습이 보인다. 질곡의 역사를 벗고 해상케이블카로 용틀임하는 섬, 고하도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목포=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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