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쓰는 약 이야기] 서방정 약 씹어 먹으면 약물사고 위험

입력
2019.12.09 18:00
수정
2019.12.10 11: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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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규격과장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두통이나 열이 날 때 가장 많이 찾는 게 해열진통제다. 그런데 해열진통제의 포장을 유심히 보면, ‘○○정’이라고 적힌 것도 있고, ‘○○이알서방정’이라고 쓰인 있는 것도 있다. 일반인이 두 약품을 모양으로 구별하기는 불가능하다.

‘○○정’은 흔히 알고 있는 일반 정제다. 반면 ‘○○이알서방정’은 일반 정제에 비해 한 알에 포함된 약효 성분의 양이 더 많다. 서방정은 약효를 나타내는 성분이 좀 더 천천히 나오게 특수 디자인된 약이다. 예를 들어 약효가 8시간 지속되는 서방정과 약효가 4시간 지속되는 정제가 있다면 서방정은 하루 3번만 먹어도 일반 정제 6번 먹는 것과 같다. 장용성제제는 약 성분이 위장이 아니라 소장에서 분해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럼 일반 정제, 서방정, 장용정은 어떻게 구분하나. 우선 상품명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상품명에 ER, CR는 ‘Extended Release’, ‘Controlled release’로 말 그대로 약물이 서서히 녹아 나오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서방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약 포장의 ‘성상’ 부분에 ‘정제’가 아닌 ‘서방제’ 또는 ‘장용성제’이라고 표기돼 있다.

서방정 및 장용정(장용캡슐 포함)은 약을 갈거나 캡슐을 벗겨 내용물만 먹으면 안 된다. 서방정은 우리 몸에 들어가 서서히 약물이 나오도록 ‘특수하게 디자인’된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약을 갈거나 씹으면 서서히 나와야 하는 약이 한꺼번에 많이 나와 약물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장용정은 의약품이 위가 아니라 장에서 녹도록 정제나 캡슐에 코팅한 것이다. 장에서 흡수돼야 하는 변비약 등에 주로 쓰인다.

정제에는 삼키는 정제 이외에 입안에서 녹여 먹거나 씹어 먹는 정제도 있다. 입안에서 녹여 먹는 대표적인 것은 구강붕해필름으로 물 없이 먹을 수 있다. 정제나 캡슐 형태 약을 삼키기 어려운 환자가 편하게 먹을 수 있어 치매치료제 등에 많이 활용된다. 씹어 먹는 정제는 향료나 단맛을 내는 성분을 넣어 어린이가 거부감 없이 약을 먹도록 한 것으로 비타민 제제로 많이 쓰인다.

겉모양이 같다고 다 같은 약이 아니다. 내가 먹는 약이 어떻게 디자인된 것인지 알아보고 목적에 따라 약의 용법·용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

장정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규격과장
장정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규격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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