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명품행정] "세탁소도 꺼리는 작업복… 시름까지 씻어드립니다"

입력
2019.12.02 04:40
수정
2019.12.02 10:0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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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경남 김해에서 처음 문을 연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가야클리닝’. 이곳에서는 단돈 500원만 내면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수거에서 세탁, 배달까지 해준다. 경남도 제공
지난달 1일 경남 김해에서 처음 문을 연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가야클리닝’. 이곳에서는 단돈 500원만 내면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수거에서 세탁, 배달까지 해준다. 경남도 제공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시름을 세탁합니다.”

기름때 잔뜩 묻은 생산직 노동자들의 작업복은 유해물질 등에 오염됐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집에서는 물론 동네 세탁소에서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이처럼 기름때 묻은 작업복 세탁에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의 고민을 단 번에 해결해 주는 공동세탁소가 경남 김해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중소 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작업복 공동세탁소는 손수 작업복을 세탁해야 하는 중소 사업장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노동계와 경영계, 지자체가 협력해 마련한 시설이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자체로 작업복 세탁소를 갖추거나 외부업체에 세탁을 맡기는 게 대부분이다.

‘노사민정 협력 모델’로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공동세탁소는 중소기업이 밀집한 김해시 주촌면 골든루트산업단지 내 한국산업단지공단 김해지사에 자리를 잡고 있다. 10월 21일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달 1일부터 ‘가야 클리닝’이란 이름으로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경남 김해시 주촌면 한국산업단지공단 김해지사 1층 건물에 위치한 노동자작업복공동세탁소에서 직원들이 수거해 온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있다. 경남도 제공
경남 김해시 주촌면 한국산업단지공단 김해지사 1층 건물에 위치한 노동자작업복공동세탁소에서 직원들이 수거해 온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있다. 경남도 제공

경남도와 김해시가 세탁소 설치비와 운영비를 부담하고,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조합원들이 모은 기금으로 세탁물 수거ㆍ배달을 위해 1톤 탑차를 기증해 힘을 보탰다. 여기에 김해상의가 책상과 냉장고 등 세탁소 비품을 지원하고, 경남경총과 한국노총은 회원사의 이용 참여를 권유하며 세탁소 운영 지원을 약속하는 등 여러 기관들의 힘을 뭉쳐 탄생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김해지역자활센터가 위탁운영을 맡아 지역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주민 11명에게 일자리를 제공, 저소득층 일자리 확대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문을 열기에 앞서 김해지역자활센터에서 한 달간 집중 직무교육을 받으며 세탁기술을 배웠다. 지난달 28일 오전 찾은 ‘가야클리닝’에는 11명의 직원들이 전날 수거한 세탁물을 검수ㆍ분류하는 작업에서부터 이물질 제거와 불림 등 전처리 작업, 기계세탁, 건조, 오염여부 확인 등 후처리 및 재세탁, 기본다림질 등 일련의 작업과정을 척척 손발을 맞춰 처리하고 있었다.

세탁소 홍균환(53) 팀장은 “저희 세탁소를 믿고 작업복을 맡겨준 노동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팀원들이 한 가족처럼 마음을 모아 정성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세탁소는 50㎏짜리 대형 세탁기 2대와 35㎏ 1대, 55㎏짜리 건조기 2대와 함께 프레스, 다리미, 재봉틀 등과 함께 가스스팀보일러 에어공급장치, 집진기, 응축수탱크, 컴프레셔 등 대형 세탁전문업소 못지않은 전문장비로 하루 400벌을 세탁할 수 있다.

세탁물은 작업복 상ㆍ하의 한 벌에 500원만 내면 수거와 배달까지 해준다. 정기 이용, 1회 이용, 당일결제 또는 월말 정산 등 결제 및 정산방법도 다양하다.

경남 김해시 주촌면 노동자작업복공동세탁소에서 직원들이 본격적인 세탁에 앞서 세탁물의 상태를 살피며 검수 및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경남도 제공
경남 김해시 주촌면 노동자작업복공동세탁소에서 직원들이 본격적인 세탁에 앞서 세탁물의 상태를 살피며 검수 및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경남도 제공

특히 이곳에서는 수거에서 세탁, 배달이 원스톱으로 이뤄지고, 세탁과정에서 떨어지는 이름표나 단추 등의 기본 수선은 덤으로 처리해 주고 있다.

골든루트일반산단, 테크노밸리, 덕암일반산단, 내삼농공단지 대규모 산단 4곳이 밀집한 곳에 설치된 이 공동 세탁소는 300명 미만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1만여명의 노동자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김해 골든루트일반산단의 조선업체에 근무하는 박모(38)씨는 “기름때로 얼룩진 작업복을 집에 가져가 세탁할 경우 다른 옷과 함께 세탁하지 못하고, 세탁기에 오염물질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늘 꺼림칙하곤 했다”며 “이젠 작업복 세탁에 대한 불안감과 고민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김해지역자활센터 심혜정(36) 실장은 “아직 초기라 물량이 목표량에 다소 못 미치고 있지만, 세탁소를 이용한 노동자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업체를 대상으로 홍보를 강화하는 등 물량 확대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 1일 개소식 축사에서 “민ㆍ관, 노ㆍ사가 협력해 추진했고, 특히 전국에서 처음 시행되는 사례라 그 자체로 매우 뜻 깊다”며 “앞으로 창원, 진주 등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해=이동렬 기자 d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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