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 차별 받는 게 아니라, 차별 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입력
2019.11.07 18:00
수정
2019.11.07 19: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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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시범운영 첫 날인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승강장에서 한 장애인이 고속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연합뉴스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시범운영 첫 날인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승강장에서 한 장애인이 고속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연합뉴스

휠체어를 탄 채로 이용하는 고속버스가 지난달 28일부터 3개월간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2005년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된 지 14년만이다. 2003년 서울시가 국내 최초로 시내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해 휠체어를 탄 채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지만 시외로 나가는 저상버스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장애인이 어떤 경우에는 버스를 타고, 어떤 경우에는 탈 수 없다면 ‘버스를 탈 수 없음’이 개인의 장애 때문일까. 사회의 장애 때문일까.

우리 사회에서 장애는 흔히 복지 문제로 치부된다. 신체 손상을 입은 개인을 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사회적으로 돌봐야 할 대상으로 간주해왔다. 신체 손상을 입어 장애가 발생하고 이러한 장애로 사회적 차별이 발생한다는 논리가 사회를 지배했다. 1996년 에바다복지회 사태를 접하며 장애인운동에 뛰어든 활동가 김도현(45)이 쓴 ‘장애학의 도전’은 우리 사회에 공고하게 뿌리 박힌 장애에 관한 인식을 전환하고자 한다.

장애학은 장애를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파악하고 접근하는 학문이다. 개인의 특정 손상 때문에 사회 차별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역으로 손상을 입은 개인을 사회가 억압해 배제와 차별이 일어난다고 본다. 말장난 같지만 엄청난 인식의 차이다. 쉽게 비유하면 남자아이는 파란색을 좋아하고 씩씩하며, 여자아이는 빨간색을 좋아하고 얌전하다는 사회의 고정관념은 생물학적 성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가부장적 억압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됐을 뿐이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신체적 손상은 사회의 억압관계에서 무언가 할 수 없는 상태인 장애로 판정된다. 저자는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 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역설한다.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지음

오월의 봄 발행ㆍ424쪽ㆍ2만2,000원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결핍된 존재로만 바라보게 된 데는 오랜 세월 사회가 이를 주입시켰기 때문이다. 근대 서구 문화의 세계관인 인간중심주의는 ‘모든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의 가치를 이성을 지닌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로 양분했다. 저자는 “모든 인간을 평등한 이성적 존재로 호명하는 듯한 이 보편명제는 다른 한편으로 이성적이지 않은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는 대우명제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매우 기만적이다”라고 비판했다. 인간중심주의와 더불어 20세기 우등한 인간 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위선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우생주의는 개인의 손상을 더더욱 사회적으로 고쳐야 할, 없애야 할 것으로 몰아넣었다. 임산부들의 산전검사 등은 그런 인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의 가슴 저릿한 연구는 장애 인식의 변화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결과로 향해간다. 저자는 장애운동의 지향이 장애인을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받게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장애인은 자립적인 존재’라고 맞서는 데 있지 않다고 한다. 애초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자립과 의존을 이분법적으로 나눴던 틀을 깨고, 인간이 그 자체로 의존적인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을 지닌 사람들끼리의 만남이 어떤 새로운 역량을 빚어낼 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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