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운명 주도’ 내려 놓고 외교안보 전략 점검을

입력
2019.11.08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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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제2 출발점’ 서다] <5>

北도 하노이 노딜후 전략 바꿔… 외교안보라인 쇄신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옛 베를린 시청에 2017년 7월 6일(현지시각)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을 위해 방문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에게 대화에 응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옛 베를린 시청에 2017년 7월 6일(현지시각)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을 위해 방문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에게 대화에 응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청와대 제공

“한반도 긴장 완화는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 나는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습니다.”

9일 임기 반환점을 맞는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7월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의 내용 중 일부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문 정부의 원칙은 출범 이래 현재까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거칠게 표현하면 지난해엔 통했지만, 올해는 통하지 않고 있다. 어느 하나만을 원인으로 꼽을 순 없겠지만, “한반도의 운명을 주도할 것”이란 의욕이 앞서 외부환경 변수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를 시작으로 한반도엔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4월 27일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이날 판문점선언엔 ‘핵 없는 한반도’ 실현에 대한 남북의 의지도 담겼다. 북미간 문제로 여겨지던 북핵 문제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생기면서 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날개를 달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6ㆍ12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며 ‘중재자’, ‘촉진자’를 자임했던 문 대통령에겐 더욱 힘이 실렸다. 이어 ‘24시간 소통채널’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성에 열리고, 제재 해제 국면에 대비한 철도ㆍ도로 연결 착공식까지 개최하며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이란 문 정부 구상이 현실이 되는 듯했다.

2018년 4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집무실끼리 연결된 핫라인(직통전화)이 개설됐지만, 아직 한 차례도 사용되지 않았다. 청와대 제공
2018년 4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집무실끼리 연결된 핫라인(직통전화)이 개설됐지만, 아직 한 차례도 사용되지 않았다. 청와대 제공

그러나 북미는 여전히 어떤 형태의 실체적인 비핵화와 그에 대한 상응조치를 어떻게 교환할지에 대해서는 물론, 서로가 원하는 최종단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북한의 대화 이탈 방지가 미국으로선 최선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미 본토에 안보 위협을 가하지 않게 달래는 선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용도로서 남아 있어주길 바랄 것이란 얘기다.

북한도 그러한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한껏 높이려는 듯하다. 미국과의 주요 협상 전후로 김 위원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담한 데 이어,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엔 중국과의 군사협력을 보란 듯 강화하고 있다.

정부도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겠으나, 이러한 환경 변화를 반영했다고 여겨지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집권 초와 같은 얘길 해도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올해 8ㆍ15 경축사에서 “평화로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 구축”을 말했지만 정부 핵심관료조차 “중장기적으론 맞는 방향이겠지만, 지금 할 얘기는 아니다”고 자조했다고 한다.

다행히 임기 절반이 남았다. “남북미 정상의 신뢰는 여전히 유효하다”고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정부의 대외 전략을 돌아보고 바꿀 건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자문연구위원은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은 전략 점검을 대대적으로 했다. 우린 어땠느냐”고 반문하며 “미중 무역전쟁, 세계적인 군비경쟁, 미ㆍ중ㆍ러ㆍ일 등 주변국과의 관계 설정 등을 정부가 냉철한 시선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조언은 희망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는 비판과도 닿아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이란 목표에 모든 사안을 꿰맞춰 해석하는 자세를 벗어나야 정부가 지향하는 불가역적인 평화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한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는 “트럼프 리더십에 대해서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방위비분담금을 과하게 요구하는 데서 볼 수 있듯 결코 정부에 득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정부 외교안보라인 쇄신 필요성도 언급된다. 집권 초부터 자리를 지키는 인사가 많다 보니, 실책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해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자신이 설계한 정책을 자신이 철회하는 건 어렵다”며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원한다면 인적 쇄신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태국 노보텔 방콕 임팩트에서 4일(현지시각)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태국 노보텔 방콕 임팩트에서 4일(현지시각)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일본과의 관계 회복도 절실해 보인다. 동아시아연구원은 지난 5일 “한일은 안보 측면에서는 미국에, 시장 측면에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한일관계가 지니는 전략적 중요성을 원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를 두고 미국과 삐걱거리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 문제도 고민할 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한반도 대화 국면은 성공적으로 열었지만, 협상 국면에 돌입하자 답보상태다. 이는 전략이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했다는 얘기기도 하다”며 “그냥 운전석에 앉는 것이 아니라 ‘똑똑한 운전자’가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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