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빈집 살리기’ 실패 사례 느는 이유? 발굴 어렵고, 찾아도 집주인은 개발 선호

입력
2019.10.23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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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조성한 마을박물관 내부 모습. 인천시 제공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조성한 마을박물관 내부 모습. 인천시 제공


늘어나는 빈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빈집 살리기’를 추진하면서 성공만큼 실패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빈집을 빌리거나 사들여 시민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업들이 대부분인데, 다양한 문제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인천 빈집 3,976채 가운데 가장 많은 857채가 몰려 있는 미추홀구는 2014년부터 빈집이나 아파트 남는 공간, 경로당 등을 빌려 어르신 한글교실, 초등학생 공부방 등으로 쓰는 ‘학습편의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습편의점은 11곳까지 늘었는데, 이중 1곳은 2017년 없어졌고 다른 2곳도 최근 문을 닫았다. 3곳의 공통점은 빈집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구 관계자는 “개인이나 구가 소유한 빈집을 리모델링해 학습편의점으로 썼는데, 2017년 1곳에 이어 올해 2곳이 계약이 만료돼 문을 닫게 됐다”라며 “임대료 부담과 재개발, 빈집이 훼손되는 문제와 관련한 집주인과의 마찰, 적은 학생 수 등 수요 부족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빈집 정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도 걸림돌이다. 재활용보다는 철거나 정비를 선호하는 데다 임대주택 등이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인천시는 2013~2018년 빈집을 포함한 폐ㆍ공가 954개동을 정비했는데, 재활용은 127개 동에 그쳤다. 나머지 827개동은 철거ㆍ정비였다. 재활용도 소공원 92개동, 주차장 24개동으로, 전체의 91.3%를 차지했다. 공동이용시설과 임대주택은 각각 8개동과 3개동으로 8.7%에 불과했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해제구역 등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청년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2015년부터 3년간 38개동 246호를 공급했는데, 2017년 말 중단했다.

활용 가능한 빈집 발굴이 어렵고 사업대상지 내 노후ㆍ불량 주택의 리모델링 비용이 과다한 데다 사업자 수 부족으로 공급이 특정 사업자에 편중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빈집법(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별법)’도 없었다.

시 관계자는 “빈집은 민간 소유라서 매입 시 소유주 동의와 매도 의사 확인, 사전조사, 현장 확인, 감정, 매입 협의 등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상당 기간이 소요된다”라며 “빈집은 감정평가금액 이하 가격으로 매입할 수밖에 없는데, 투자 목적이 있는 빈집 소유주와는 기대 가격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어 매입이 원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빈집 살리기는 결국 집주인ㆍ주민과의 접점 찾기에 달려 있다고 조언했다.

박미진 인천대 도시건축학부 교수는 “빈집이 늘고 슬럼화가 진행되는 마을 주민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의욕을 잃고 관에서 개발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빈집을 활용하는 사람이나 조직이 ‘주민에게 다가가 소통하고 마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게 필요하다”라며 “전국적으로 빈집을 문화창작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유행하면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보조금 등 지원만 받고 사라지는 예술인 때문에 갈등이 빚어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제자가 원도심 지역에 창문 하나 없는 낡은 3층짜리 건물을 자기 돈을 들여 리모델링해 잘 활용하고 있는데, 집주인도 이에 발맞춰 수년째 월세를 동결해 주고 있다”라며 “집주인들도 ‘적은 돈을 받느니 방치한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사익과 공익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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