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중국 ‘구단선’ 표시한 애니 상영 취소

입력
2019.10.16 21:15
수정
2019.10.17 00: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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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주장을 반영했다는 이유로 상영이 취소된 애니메이션 관련 뉴스를 다룬 베트남 현지 매체의 홈페이지.
베트남에서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주장을 반영했다는 이유로 상영이 취소된 애니메이션 관련 뉴스를 다룬 베트남 현지 매체의 홈페이지.

베트남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분쟁 중인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그 불똥이 ‘스크린’으로도 튀었다. 중국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구단선(九段線)을 등장시킨 애니메이션에 대한 상영 취소 명령이 떨어졌다.

16일 CJ CGV 베트남에 따르면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4일 남중국해 구단선이 표출됐다는 이유로 애니메이션 ‘어바머너블(Abominableㆍ베트남 개봉명 에베레스트-꼬마 눈사람)’의 상영 허가를 취소했다. 지난 4일 베트남에서 개봉된 지 열흘 만이다.

CGV 베트남 관계자는 “당국 검열에 대비한 자체 사전검열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고, 상영을 최종 허가한 베트남 당국도 검열 과정에서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며 “베트남의 한 언론인이 발견, 지난 주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논란이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중국 출신 소녀 ‘이(Yi)’가 과학자들에게 감금된 눈사람 ‘예티(Yeti)’를 예티의 고향인 에베레스트산으로 데려가는 여정을 담았다. 베트남 배급은 CJ CGV 베트남이 맡았으며, 자사 영화관 외에도 롯데시네마, 갤럭시 등 베트남 대부분의 극장에 걸렸다. CJ CGV 베트남은 현지의 최대 영화 배급사다. 제작은 미국 드림웍스 애니메이션과 중국 펄 스튜디오 공동으로 이뤄졌으며, 이번 사건은 최근 세계 주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중국 시장을 겨냥해 경쟁적으로 중국과 협업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논란이 일자 즉각 배급사 책임론이 제기됐다. 특히, 지난해 중도 상영 중단됐던 영화 ‘홍해 요원(오퍼레이션 레드 씨)’도 CGV가 배급한 사실이 거론되면서 “베트남 주권을 침해한 행동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배급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격한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홍해 요원’은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 입장을 담았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중간에 상영 허가가 취소됐다. CGV에 따르면 이번 영화에서 구단선이 표시된 문제의 지도는 약 2초간 노출됐다.

CGV 관계자는 “즉각 베트남어로 보도자료를 내고, 자체 사전검열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했다”며 “그 뒤 격한 반응은 다소 수그러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비난 여론은 검열 당국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현지 매체들은 당국이 해당 애니메이션 상영을 허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철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베트남은 현재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대치 중이다. 지난 7월 초 중국 해양탐사선이 경비정의 호위를 받으며 베트남이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주장하는 해역에 진입, 3개월 이상 탐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경비정을 파견하고 또 중국에 여러 차례 항의하며 교섭을 벌이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 또한 강경해 이렇다 할 사태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베트남 내 반(反)중국 정서도 더욱 고조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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