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음악감독 “한국 신인감독과 일 안 할 이유 있나”

입력
2019.10.14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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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휩쓴 세계적인 음악가 A. R. 라흐만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새 영화 ‘99개의 노래’를 최초 공개했다. 그가 원안과 음악, 제작까지 도맡은 작품이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휩쓴 세계적인 음악가 A. R. 라흐만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새 영화 ‘99개의 노래’를 최초 공개했다. 그가 원안과 음악, 제작까지 도맡은 작품이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막바지를 향해 가던 지난 9일, 인도 영화 ‘99개의 노래’ 야외 상영을 앞두고 깜짝 미니 연주회가 열렸다. 감미로우면서 때로 격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가을 바람을 타고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무대 위 연주자는 인도 출신 세계적인 음악가 A. R. 라흐만(53).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관객과 첫 인사를 나눴다.

라흐만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 다양한 악기 연주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인도 최고의 영화 음악 감독이다.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2009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음악상과 주제가상, 영국 아카데미영화상 음악상, 골든글로브 음악상 등을 휩쓸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2002년 초연한 영국 웨스트엔드 인기 뮤지컬 ‘봄베이 드림스’를 뮤지컬 대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함께 작업했고,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자메이카 레게 가수 밥 말리의 아들인 데미안 말리 등과 프로젝트 밴드 슈퍼헤비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인도 영화 40여편 외에도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출연한 ‘골든 에이지’(2007)와 보일 감독의 ‘127 시간’(2010) 등에서도 음악을 책임졌다.

부산에서 처음 공개한 새 영화 ‘99개의 노래’는 라흐만 감독이 음악뿐 아니라 원안과 제작까지 도맡은 작품이다. 가난한 천재 음악가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음악을 통해 치유하고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다. 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마주한 라흐만 감독은 “음악의 선한 영향력을 증명하고 관객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음악가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편견과 낙인이 따라 다녀요. 예컨대 영화 ‘스타 이즈 본’에서도 음악가는 예술적 고뇌로 힘들어하면서 술과 약물에 찌들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잖아요. 저는 일탈이 아닌 사랑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인도 음악 영화 ‘99개의 노래’.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인도 음악 영화 ‘99개의 노래’.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노래 100곡을 만든다. ‘99개의 노래’라는 제목은 마지막 100번째 완벽한 곡을 완성하기 위한 여정을 의미한다. 라흐만 감독은 “극의 전개를 따라서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음악과 서사의 균형을 맞추려 고심했다”고 말했다. 음악가가 만든 음악 영화이지만 자전적 경험이 담기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실 저는 음악가로 매우 순탄한 길을 걸어 왔어요. 아버지가 작곡가라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죠. 전기공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먼저 음악을 하라고 권유하실 정도로 지지를 받았고요. 영화 속 주인공과는 반대였던 셈이죠.”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후 미국에 스튜디오를 열고 활동 근거지를 옮겼던 그는 2015년 인도로 돌아왔다. ‘99개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듬해 제작에 착수해 3년 만에 영화를 세상에 내 놓았다. 라흐만 감독은 “아이가 셋인데 오래 떨어져 지냈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삼촌’이라 부르더라”며 “인도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또 다른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미 음악가로 전 세계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데도 영화 제작자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가 뭘까. “영화 배경음악과 주제가를 만드는 반복적인 작업에 조금 지쳤어요. 매번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어요.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스스로 도전과제를 만들어 봐야겠다 싶었죠. 이 영화는 제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됐어요. 대형 스튜디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자유를 얻었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집요하게 작업하면서 창작의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라흐만 감독이 유명한 대가보다 젊은 신진 감독과 더 많은 협업을 바라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국 신인 감독에게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와이 낫(Why Notㆍ안 할 이유가 있나)”을 크게 외치며 껄껄 웃었다.

라흐만 감독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고 유엔에서 자선 공연을 하는 등 음악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그에게 음악은 곧 “나눔”이다. “나눔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로 다시 창작을 합니다. 나누지 않는 삶은 지루해요. 제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나눔이라는 메시지를 얻어 가길 바랍니다.”

부산=글ㆍ사진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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