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마녀사냥과 가짜뉴스

입력
2019.10.11 18:00
26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오대근기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오대근기자

전쟁과 종교개혁이 진행되고 수많은 사람이 흑사병으로 죽어가던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사냥이 유행했다. 특히 흑사병 기근 등으로 유럽 인구의 30% 이상이 사라지면서 원인을 정확히 몰랐던 이 병을 둘러싸고 확인되지 않은 음모가 나돌았다. 마녀 유대인 무슬림 나환자 등이 기독교 국가와 유럽을 파괴하기 위해 대역병을 퍼트렸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유언비어 같은 것들이다. 특히 흑사병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봉건제도가 붕괴됐고, 종교재판이 이교도 박해 수단으로 마녀사냥을 활용하면서 사회는 집단 광기에 빠졌다.

□ 마녀임을 확인하는 방법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여성의 몸을 밧줄로 묶은 후 강에 던져서 익사하면 마녀가 아니고, 살아서 물에 뜨면 마녀라고 판정한다. 마녀라는 의심을 받는 여성은 이래저래 절망적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교회는 마녀 재판을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 종교재판의 희생자들에게 그들을 묶은 밧줄 값과 화형에 처할 나무 값도 부과했다. 잔인한 고문의 각 단계마다 요금이 매겨졌고, 고문을 못 이겨 마녀라고 자백할 수밖에 없어 유죄를 선고받은 마녀는 화형대로 보내졌다. (‘과학의 일곱기둥’, 황진명ㆍ김유향)

□ 마녀로 낙인이 찍히는 데는 ‘교회에 잘 나가지 않는다’는 등의 오만 가지 이유가 있었고, 일단마녀로 의심을 받으면 소문이 지역사회를 넘어 당국의 귀에 들어가고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마녀재판이 금지되면서 마녀의 법적 처형은 1782년 폴란드에서 마지막으로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마녀사냥은 계속되고 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매년 수천 명이 마녀사냥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또 유엔은 인도 등지에서 매년 5,000여명의 여성이 가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명예 살해’를 당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가짜뉴스가 횡행한다는 지적이 많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제도 개선에 나서려는 이유다. 가짜뉴스는 당연히 ‘사이버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 소문이 가짜뉴스로 위장해 대중에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뢰가 별로 가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틈만 나면 언론이 가짜뉴스를 퍼트린다고 주장한다. 자신에 대한 탄핵 조사를 촉발한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지자 이번에는 언론을 향해 ‘마녀사냥’이라며 공격했다.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아 세상이 혼란스럽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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