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남겨진 굴뚝 하나

입력
2019.10.11 04:40
31면
안양은 공업도시였고, 그 도시 한복판에 삼덕제지라는 공장이 있었다는 것, 그 공장에 기대어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시대가 바뀌어 이제 그 공장이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공장 굴뚝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삼덕제지 공장이 있던 곳은 지금 삼덕공원이 됐다. 하지만 공장을 공원으로 만들고 굴뚝을 남기는 일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사진은 경기도 안양시 삼덕공원. 안양시 제공
안양은 공업도시였고, 그 도시 한복판에 삼덕제지라는 공장이 있었다는 것, 그 공장에 기대어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시대가 바뀌어 이제 그 공장이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공장 굴뚝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삼덕제지 공장이 있던 곳은 지금 삼덕공원이 됐다. 하지만 공장을 공원으로 만들고 굴뚝을 남기는 일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사진은 경기도 안양시 삼덕공원. 안양시 제공

경기도 안양시, 안양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도심 한복판에 작은 굴뚝이 하나 서 있는 공원이 있다. 원래 이 공원에는 삼덕제지라는 제지공장이 42년 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2003년, 삼덕제지는 공장 이전을 결정했고, 공장 주인은 공장 부지를 안양시에 기증했다. 공장 운영으로 그동안 주변에 많은 피해를 줬으니 이제 그 빚을 갚겠다는 것이 공장 부지를 기증한 전재준 회장의 말이었다. 기부의 조건은 공장 굴뚝 하나를 남긴 공원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안양은 공업도시였고, 그 도시 한복판에 삼덕제지라는 공장이 있었다는 것, 그 공장에 기대어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시대가 바뀌어 이제 그 공장이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공장 굴뚝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삼덕제지 공장이 있던 곳은 지금 삼덕공원이 됐다. 하지만 공장을 공원으로 만들고 굴뚝을 남기는 일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안양시는 기부자와 상의 없이 굴뚝을 철거했고, 공원 아래에 대규모 주차장을 만들려고 했다. 이에 부지 기부자인 전재준 회장은 지하주차장 위의 공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안양시민에게 서명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부자와 안양 시민사회의 반발이 이어지자 안양시는 지하주차장 건설 계획을 취소했다. 그리고 이미 철거한 커다란 공장 굴뚝을 대신해 3분의 1 크기로 축소한 굴뚝 모형을 세웠다. 2009년, 그렇게 공장 부지는 삼덕제지의 흔적 모형을 남기고 삼덕공원이 됐다. 전재준 회장은 자신이 기부한 공장 부지가 공원이 되는 광경을 바라보고 1년 후 세상을 떠났다.(공원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난 지금, 안양시는 공원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있다.)

원형이 아닌 축소된 모형이 세워진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지만, 남겨진 굴뚝은 삼덕공원의 상징이 됐고, 삼덕공원을 다른 공원과는 다른 특별한 곳으로 만들었다.

서울의 청계천은 오랫동안 서울 시민의 하수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악취가 심하고 더러운 물이 흐르던 청계천은 서울의 골칫거리였다. 청계천은 복개됐고, 그 위로 도로가 생겼다. 세월이 흘러 청계천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보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2000년, ‘청계천 살리기 연구회 심포지엄’이 만들어지면서 청계천 복원은 공론화됐다. 2002년, 신임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이 됐다. 청계천은 복원됐고, 청계고가도로는 철거됐다.

시대가 바뀌어 고가도로보다 도시하천이 더 소중한 시절이 됐지만, 청계고가도로가 청계천 위를 지나며 물자와 사람을 실어나른 것 또한 서울의 역사이고 서울 시민의 삶의 흔적이었다. 동대문구 용두동 구간에 옛 청계고가도로 교각 3개가 남겨졌다. 그렇게 청계천에는 역사가 쌓여갔고,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통영의 한 조선소는 문을 닫으면서 관광문화복합단지로 만들 계획이 세워졌다. 조선소의 상징인 골리앗 크레인의 재활용을 전제로 한 설계공고가 발표됐다. 그렇게 옛 조선소는 다른 용도로 바뀌겠지만 골리앗 크레인은 남아 이 땅에 조선소가 있었고, 그 조선소에 기대어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항만시설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시민에게 개방될 준비를 하고 있는 인천 내항 1부두에서는 최근 크레인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산업시설과 항만시설은 인천의 바다를 시민들로부터 고립시킨 장본인들이지만, 그것이 인천 바다의 역사이다. 1부두의 상징으로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크레인을 함부로 철거하는 것은 내항의 역사를, 인천 바다의 차별성을 철거하는 것과 다름없다. 내항의 크레인은 우리가 어떤 상상을 하느냐에 따라 오래된 가치에 새로운 가치가 더해진 구조물로 재탄생할 수 있다. 필요 없는 구조물로 여겨 함부로 고철로 팔 물건이 아니다.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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