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4차 산업, 없음을 파는 시대

입력
2019.10.10 04:40
31면
구글이나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가 무형의 판매자라면, 유튜브나 아마존, 알리바바는 아예 판매하는 것 자체가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구글이나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가 무형의 판매자라면, 유튜브나 아마존, 알리바바는 아예 판매하는 것 자체가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기업이란 당연히 차별화된 유형의 물건을 판매하고 이익을 남긴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제조업 비중이 큰 경우에 이런 인식은 더 강하게 마련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반도체, 현대ㆍ기아차의 자동차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오면,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유형이 아닌 무형을 파는 기업으로 급속하게 재편된다. IT 업계를 선도하는 동시에 미국을 대표하는 초거대 기업인 팡(FANG), 즉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 넷플릭스(Netflix), 구글(Google)은 무형에 대한 의존도가 압도적이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멀리 컴퓨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컴퓨터는 TV나 냉장고처럼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된 동일한 제품이 아니다. 공장에서 출고되는 컴퓨터는 분명 동일성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후 사용자 환경에 따라 다양한 패턴으로 변모하는 다양성을 거치게 된다. 즉 컴퓨터는 출고될 때 완성되는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에 의해 완결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또 이러한 완성이라는 것 역시 현재적인 완성일 뿐, 최종적인 완성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컴퓨터는 무한 변화의 열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열린 결말의 기계이다. 그리고 열린 결말은 다시금 사용자 각각에 따라 서로 다른 다양성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컴퓨터의 열린 가능성은 스마트폰을 통해 더욱 확대된다.

구글이나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가 무형의 판매자라면, 유튜브나 아마존, 알리바바는 아예 판매하는 것 자체가 없다. 유튜브나 해외 직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방식이라면 기업이 망하기도 참 어렵겠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순환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기업에는 특정한 상품 자체가 없다. 이렇다면 상품이 문제 될 것도 없지 않은가.

2016년 갤럭시 노트7의 발화와 리콜로 인해, 삼성전자는 막대한 피해와 이미지 손실을 입었다. 이것은 유형의 판매자에게는 언제나 따르는 위험요소로 2010년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사태 등에서도 확인된다. 즉 최강자조차 한 번의 실수로 급격한 추락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형을 넘어선 ‘없음의 판매자’에게는 이런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튜브의 평가액은 200조원으로 현대ㆍ기아차 시가총액의 3배를 넘는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는 이보다 훨씬 거대한 기업들이라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이러한 초거대 기업들이 불과 20여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기업이라는 점은,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현실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노자가 말하는 허(虛)의 가치를 떠올려보곤 한다. 허란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무(無)가 아닌 열린 변화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노자는 ‘방은 비어 있기 때문에 침실도 되고 식당도 되며 공부방도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빔의 쓰임이며, 이것은 무한으로까지 확대되는 다함 없는 가능성의 세계인 것이다.

또 불교의 공(空)사상 역시 명확한 실체가 없다는 인식 속에서, 변화의 의미를 파악하는 철학이자 수행론이다. 쉽게 말해, 현상은 존재하지만 실체는 없는 꿈이나 매트릭스와 같은 관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이를 진공묘유(眞空妙有) 즉 ‘본질은 없지만 현상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없음을 파는 가치는 동양에서 먼저 제기된 관점이라는 판단도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동양의 정신문화를 계승했음에도 이를 현대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했으며, 또 이런 기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창의적인 IT 기업이야말로 4차 산업 시대를 헤쳐나갈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왠지 옷깃을 여미고 숙연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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