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칼럼] 文정부 반환점 앞 ‘두쪽 난 광장’

입력
2019.10.03 18:00
30면

조국 집착하다 ‘경험 못한 나라’ 길 잃어

서초동-광화문으로 갈린 ‘진영전쟁’ 확산

대통령 눈높이, 조국 넘어 국민에 맞춰야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대해 검찰은 물론 법무부와 대통령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 뒤 이례적으로 검찰총장을 직접 거명하며 “신뢰받은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청와대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대해 검찰은 물론 법무부와 대통령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 뒤 이례적으로 검찰총장을 직접 거명하며 “신뢰받은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청와대제공

한 달 뒤면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게 된다. 그럼 지금쯤 대선과정에서 약속하고 취임사에서 천명한 집권 청사진이 얼마나 구현됐고 앞으로 남은 과제는 뭔지, 평가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게 정상이다. 국민들 역시 개개인의 잣대로 정부의 공과를 따지며 사실상 중간평가가 될 내년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는 게 상식이다. 이 정부가 어떤 정부인가.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을 자행한 박근혜 정부를 탄핵한 촛불의 명령을 받들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장담한 정부가 아닌가.

문 대통령은 분명 평등ㆍ공정ㆍ정의가 물결치는 차별없는 세상과 이념ㆍ지역ㆍ계층ㆍ세대로 갈라진 국민이 한 마음으로 통합해 새 역사를 쓰는 나라를 꿈꾸었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나누고 권력기관의 무소불위 권한과 잘못된 관행을 개혁하며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하는 일도 그의 청사진에 담겼다. 깨끗하고 솔직하며 소통하는 대통령을 브랜드로 삼아 특권과 반칙이 없는 풍요로운 세상도 약속했다. 인재를 널리 구하는 탕평인사와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삼는 협치로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청산하고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겠다는 말엔 자신이 넘쳤다. 진영을 떠난 통합과 공존을 강조할 때는 특히 그랬다.

촛불에 기대 문 정부가 제시한 눈높이는 이랬지만, 과욕으로 드러났다. 가보지 않은 길을 택했던 경제는 도중에 길을 잃었고, 정권의 자원을 총동원했던 한반도 평화는 오리무중이다. 국정의 두 축으로 삼은 경제ㆍ민생과 외교ㆍ안보의 결과가 이러니 올들어 지지율이 데드크로스를 넘나들고 급기야 ‘조국 논란’ 이후 한때 40% 선마저 위협받은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6ㆍ13 지방선거에서 못난 야당 덕분에 집권여당이 분에 넘치는 승리를 거둔 것이 여권에 독약이었을지 모른다. 조국 민정수석의 주도로 청와대가 공들여 발의한 헌법개정안이 야당의 외면으로 국회심의조차 받지못한 채 폐기되고, 금융개혁의 전사로 내세운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끝내 낙마하는 정치구도의 한계를 깨닫고 ‘문재인 정치’의 내용과 외관을 재검검하는 기회를 놓쳤으니 말이다. 지지세력에 대한 과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 압승 직후 여권의 자만과 비리를 경계하며 유능함과 도덕성, 겸손 등의 덕목을 각별히 강조했다. 적절한 지적이었지만 이후 연말까지 청와대 비서관 음주운전, 특감반 수사관의 비리와 사찰의혹 폭로, 환경부 블랙리스트, 기재부 사무관 양심선언 등의 기강해이 사례가 이어지고 문 정부의 내로남불식 정의에 의구심이 증폭된 것은 아이러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장면은 지난해 말 문 대통령이 기강해이 책임론의 중심에 있던 조 수석을 일방적으로 감싸며 청와대 공직기강 관리체계 강화와 특감반 개선방안만 주문한 것이다. 문제가 있어 강화와 개선을 주문하려면 질책이 앞서는 게 상식이지만 그냥 눈감았다. 지지자들은 “역시 우리 이니와 구기”라고 환호했을 것이다. 이후 정치는 실종됐다. 문 대통령은 이때 그를 보호했기에 사법ㆍ검찰 개혁법안을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 법무부장관 임명까지 내달렸을 것이다. 물론 촛불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던 그에게 그토록 많은 도덕적 흠결과 법적 의혹이 있을 줄은 몰랐을 테고.

긴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은 조국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문 대통령이 너무나 큰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명백한 위법행위의 확인’을 임명강행 이유로 언급한 것은 공직인사의 근간을 뒤흔든 것이어서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가장 아픈 것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약속이 국민을 두 동강내는 결과로 나타난 점이다. 지난 주말 서초동 검찰청 앞 검찰개혁 촉구 대규모 촛불문화제와 어제 광화문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는 그 세대결의 규모에 놀라기에 앞서 “다들 진영으로 나뉘어 미쳐 버린” 상황까지 왔음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이제는 우상이 된 촛불로 남은 임기를 채울 수는 없다. 대통령 눈높이를 다시 높여야 한다.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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