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미국이 뭐길래 민족 내부 문제에…” 남북 경협 허용 요구 포석?

입력
2019.09.23 14:54
수정
2019.09.23 15:09
구독

北매체, 美정부 “남북관계 진전, 북핵 해결과 별개 아냐” 언급에 반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9ㆍ19 평양공동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9ㆍ19 평양공동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미국과 건건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에는 남북 간 민족 문제에 끼어들 자격이 있냐고 새삼스레 미국에 시비하면서다. 대미 비핵화 협상 재개를 앞두고 미리 포석하는 모습이다.

북한 대외 선전 매체 ‘메아리’는 23일 ‘북남관계를 핵 문제에 종속? 참을 수 없는 모독’ 제하 글에서 “최근 미국이 북남관계 진전이 ‘북핵 문제’ 진전과 분리될 수 없다고 또다시 을러메면서(위협하면서) 남조선(남한) 당국을 강박하고 있다”며 “대체 미국이 뭐길래 우리 민족의 내부 문제에 한사코 머리를 들이밀려고 하는가”라고 힐난했다. “강도의 횡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는 앞서 7일 문재인 정부의 ‘평화경제’ 구상이 북미관계와 비핵화에 기여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미 국무부가 “남북관계 진전은 북한 핵 프로그램 해결과 별개로 이뤄질 수 없다”고 답했다는 미 관영 방송 미국의소리(VOA)의 보도를 겨냥한 것이다. 원론에 가까운 언급에 새삼 발끈하는 모양새다.

실제 매체는 “북남관계 개선의 기미가 보일 때마다 ‘속도 조절’을 운운하며 북남관계를 조미(북미)관계에 종속시켜야 한다고 떠들어대던 미국이 북남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현 상황에서까지 ‘남북관계의 진전은 북핵 문제 해결과 별개로 이뤄질 수 없다’고 다시금 못박고 나선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저들의 ‘승인’이 없이는 북남관계가 한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내정에 간섭할 권리는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국제기구에도 주어져있지 않다”며 “국가로 태어난 지 고작 이백수십여년밖에 안 되는 미국이 감히 반만년 역사국에 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리 민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으로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저들의 영향력에 대해 과신하던 나머지 국제사회의 고립을 스스로 불러오고 인류의 지탄을 받아 쇠퇴 몰락한 나라들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저들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착각하지 말고 더 이상 우리 민족의 공분을 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남측을 향해서도 ‘국제 공조’ 대신 ‘민족 공조’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민족 공조만이 유일한 출로’라는 글에서 대(對)일본 외교 및 공공외교 예산이 증액된 외교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거론하며 남측이 대북 정책의 ‘국제적 공조’를 명목으로 남북 간 불신을 만들고 있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은 겨레와 국제사회 앞에 확약한 북남관계 문제들에 대해 의무를 이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세의 눈치를 보며 외세의 지령 하에 움직이고 있다”며 사대적 근성과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 공조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렇게 북한이 대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한미를 상대로 다시 민족 공조 당위성을 환기시키고 나선 건 사실상 대북 제재의 벽에 막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남북 경제협력을 입장의 액면과 달리 비핵화 반대급부 중 하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이 경우에 따라서는 제재 적용도 유연하게 할 수 있음을 최근 시사하고 있는 만큼 남북 경협을 제재 예외 사업으로 분류하는 게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는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는 문재인 정부의 당초 구상이 북미 협상 과정에서 다시 부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