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WTO 양자 협의 응한 日, 치밀한 준비로 철회 이끌어야

입력
2019.09.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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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와라 잇슈 일본 경제산업장관이 지난 11일 장관 임명 직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스가와라 잇슈 일본 경제산업장관이 지난 11일 장관 임명 직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의 반도체ㆍ디스플레이 3개 핵심소재 수출 규제 조치가 부당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에 양자 협의 요청서를 보낸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협의에 응하겠다는 방침을 20일 밝혔다. 양자 협의는 WTO 분쟁 해결의 첫 단계로 한국이 요청서를 발송한 지난 11일 일본이 이를 확인하면서 WTO 제소 절차는 이미 시작됐다.

일본이 과거 WTO에 피소됐을 때 양자 협의에 불응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는 예상된 결정이다. 절차상 합의 기간은 2개월이다. 이 기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은 제3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WTO에 분쟁처리위원회(패널) 설치를 요구할 수 있다. 양자 협의를 포함해 패널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5개월 정도 걸리며 한쪽이 불복해 최종심까지 가면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 3년 정도 소요된다. 스가와라 잇슈 일본 경제산업상은 “양자 협의에 응하는 것과 별도로 일본의 조치가 WTO 협정에 부합한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혀 양자 협의 성사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양측이 처음으로 해결 노력을 위한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또 일본이 치밀하게 준비해 무역 보복을 시작했지만, 한국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자 당황하고 있다는 정황도 양자 합의로 인한 조기 해결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 관계자가 “예상 이상으로 소동이 커졌다”며 오판을 인정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또 일본의 무역 보복이 한국의 부품ㆍ소재 국산화를 촉진해 해당 일본 기업의 손실이 커지고 있으며, 일본제품 불매와 여행 중단이 장기화하면서 일본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우리로서도 일본과의 분쟁이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설사 WTO 소송에 승소하더라도 실질적 효과는 별로 없다는 한계도 있다. 우리 협상단은 양자 협의에서 일본의 무역 보복 철회를 끌어내겠다는 각오로 치밀한 논리를 세워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일본이 먼저 자유무역 원칙을 무너뜨리며 시작된 분쟁인 만큼 우리가 협상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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