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자본주의 리셋

입력
2019.09.2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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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타임스 18일자 1면
파이낸셜타임스 18일자 1면

영국의 중도 우파 성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8일 자 1면을 ‘자본주의 리셋할 때가 됐다’(CAPITALISM. TIME FOR A RESET)라는 다섯 단어로 채웠다. FT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내놓는 대대적 기획이다. FT 편집장은 “자유 기업 자본주의는 지난 50년간 빈곤을 없애고 생활 수준도 크게 향상시켰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기업이 주주가치 극대화에만 집중하는 것은 충분치 않게 됐으며, 자유 기업 자본주의의 장기적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이윤을 고객과 종업원에게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고 장기 기획의 목적을 밝혔다.

□ 지난달 19일(현지 시간)에는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 181명이 기업 목적을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고객, 직원, 커뮤니티 등 모든 ‘이해당사자 번영 극대화’로 바꾸겠다는 성명서에 서명했다. 참여 CEO는 JP모건체이스 제이미 다이먼, 아마존 제프 베이조스, 애플 팀쿡, GM 메리 베라 등 슈퍼스타급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의 성명은 기후 변화, 임금 불평등 확대, 근로조건 악화 등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불만을 더는 외면할 수 없어 내린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 경제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6년 만에 내놓은 후속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최악으로 치닫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담한 대안을 내놓았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그중 하나가 정부가 25세가 되는 모든 이에게 그 나라 일인당 평균자산의 60%에 해당하는 ‘기본자본’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신한은행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인당 평균자산이 약 3억2,500만원이니까, 1억9,500만원을 25세가 되는 젊은이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그 재원은 0.1~90%의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적 재산세를 신설해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 피케티는 미 대선에 출마한 엘리자베스 워런의 ‘부유세’ 공약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워런은 5,000만달러(약 600억원) 이상 자산에 부유세 2% 부과를 공약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생 학자금 빚 탕감 등 불평등을 치유할 20여개 공약을 내세우며 “나에겐 대안이 있다”는 구호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까지 성장전략이 한계에 달했는데도, 여전히 수십 년 묵은 대책만 되풀이하는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이런 대담한 대안들이 등장하는 풍토가 부럽기만 하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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