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도 모르는 통영 핫플, 알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

입력
2019.09.21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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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통영살이 그림일기 낸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통영 봉수골 ‘내성적쌀롱’에서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통영살이를 담은 그림일기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를 들고 있다. 남해의봄날 제공
통영 봉수골 ‘내성적쌀롱’에서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통영살이를 담은 그림일기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를 들고 있다. 남해의봄날 제공

“여기 언제 문 열어요?”

여성 두 분이 “지나가다 와봤다”며 간판도 메뉴판도 없는 가게 문을 열고 외친다. “아직은 아닌데…. 그냥 한잔 하고 가세요.” 인터뷰 중 카운터로 가 앞으로 팔 커피 메뉴와 벽에 건 콘서트 포스터, 엄밀히 말해 ‘남의 장사’를 열심히 소개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대답을 이어가는 가게 주인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4일 경남 통영 봉수골에 문화공간 ‘내성적싸롱 호심’을 연 그는 “통영이 이렇다. 작은 동네라 옆집에서 뭐하는지 다들 궁금해 한다. 스윽 들어와 구경하고, 스윽 앞마당에 꽃 심어주고 그런다”며 손님에게 공짜 커피를 대접했다(인터뷰 당시에는 사업자등록을 마치지 않았다). “옛 지역 작가들이 공동으로 썼던 주택을 사서 1년간 개조했어요. 앞으로 커피 마시며 토론하고 공연 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운영할 겁니다. 20~30명 규모 강연, 모임을 열거고요.” 때마침 통영살이를 담은 그림일기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남해의봄날 발행)도 출간됐다.

밥장이 통영에 ‘싸롱’을 열게 된 계기는 3년 전 통영 당동에 집을 마련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영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랐지만, 정작 자신은 어릴 적 기억조차 없던 ‘호적상의 고향’이다. 수년간 전국 방방곡곡 지역축제, 행사에서 일러스트를 그리면서 “지방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린 즈음, 2010년 통영에서 석달 간 머물며 그림책 작업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샘솟았다.

일러스트 작가 밥장. 남해의봄날 제공
일러스트 작가 밥장. 남해의봄날 제공

본격적으로 통영에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소개받은 집은 마음에 안 들었어요. 부동산에 제가 이런 일 하는 사람이고 이런 용도로 쓸 집을 찾는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죠.” 석달 만에 찾은 당동의 오래된 집은 안방에 불상을 모신 ‘지장암’이라는 절집이었다. “괜찮겠냐”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통영 구시가가 한 눈에 들어오는 빼어난 전망에 마음을 굳힌 그는 당장 집을 계약했다. 그리고 “(불상 모신) 안방에서 자면 돈 방석에 앉는다”는 유언비어를 직접 만들고, 집들이를 하면서 통영 친구들을 사귀었다.

2011년 통영에 출판사를 차린 남해의봄날 대표가 그가 통영에 터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림일기를 써보라고 제안했다. “외지에 정착하는 첫 3년은 하루하루가 새롭다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사람 만나고 새로운 일이 벌어지니까. 저도 여행가면 항상 그림일기 썼거든요.” 3년간 부지런히 통영의 맛과 멋과 일화를 쓰고 그린 게 단행본 크기의 일기장 7권에 달했고 그 중 일부를 모으고 다듬어 최근 책으로 냈다. 일기 원본은 ‘내성적싸롱 호심’에서 상설 전시하고 있다.

외지살이 1년차에 부지런히 할 일은 구글맵에서 절대 검색할 수 없는 ‘취향의 지도’를 만드는 거였다. 밥장은 “통영은 동네가 작아서 비슷한 일하고 비슷한 취향 가진 사람들이 어딜가나 만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동네도 모르고 거기 가면 누가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주소상의 지도 외에 취향의 지도가 필요한데, 1년차에 그런 지도를 만들어야죠.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얘기 나눠보려고 집에서 파티 많이 열었습니다.”

일러스트 작가 밥장. 남해의봄날 제공
일러스트 작가 밥장. 남해의봄날 제공

친분을 쌓은 2년차에는 ‘통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 등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과학 강연회를 열고, 통영에 정착한 문화예술계 사람들과 모임 ‘통영에서 길을 묻다(약칭 통로)’를 만들어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통영 강구안 친수사업을 반대하는 ‘강우안은 항구다’ 캠페인을 시작으로 지난해 3월 작곡가 윤이상 유해가 통영국제음악당에 묻혔을 때 현수막을 직접 만들고 축하 일러스트를 그려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최근에는 집집마다 안 쓰는 텀블러를 기증받아 세척 후 지역축제 등을 열 때 무료로 빌려주는 공유 텀블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밥장은 “지난달 한산대첩축제 때 캠페인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제 매장에서도 테이크아웃 컵 안 쓰고 공유텀블러를 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통영 정착 3년을 넘어선 지금, 밥장은 통영 자영업자들과 모임 ‘여행하고사남(약칭 여행)’을 통해 새로운 통영 관광 명소를 소개하고 있다. ‘쌍욕라테’로 유명한 울라봉카페, 프랑스 르코르동블루 출신의 요리사가 운영하는 원테이블 식당 오월, 수제 사우어맥주를 맛볼 수 있는 펍 미륵미륵맥주 주인 등이 이 모임의 회원이다.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 설치’, ‘회원사 간 문화행사는 겹치지 않게 연다’ 등 암묵적인 규율이 있다고. 밥장은 “출판사가 새 책 표지에 통영을 대표할만한 이미지를 그려달라고 했는데, 아직 없더라”면서 “사람들이 케이블카나 루지 타려고 두 번 세 번 통영을 찾을 것 같지도 않다. 통영 찾은 분들이 밥 먹고 산책하고 즐길 만한 여행 동선을 자영업자들이 짜주자는 게 이 모임의 취지”라고 덧붙였다.

통영살이 3년, ‘인생후반전’을 준비해 새 가게를 연 그는 다짐하듯 책에 썼다. ‘두렵지 않으면 설렐 수 없다. 설레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안정된 인생이란 뻔한 인생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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