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칼럼] 모순, 과도기, 도약

입력
2019.09.04 18:00
29면
한국인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을 모순이나 부조리로 여기지 못한다. 모순과 부조리를 합리화하고 봉합해버리는 마법과 같은 해석이 항시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인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을 모순이나 부조리로 여기지 못한다. 모순과 부조리를 합리화하고 봉합해버리는 마법과 같은 해석이 항시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브누아 페터스의 ‘데리다, 해체의 철학자’(그린비, 2019)다. 이 책은 한국어로 볼 수 있는 자크 데리다(1930~2004)의 유일한 전기다. 이 책 이전에 원제가 ‘Jacques Derrida: A Biography’였던 제이슨 포웰의 ‘데리다 평전’(인간사랑, 2011)이 있었으나 일반적인 전기라고 보기에는 망설여지는 점이 많다. 제이슨 포웰은 데리다의 저작을 집필 순서대로 따라가며 책을 소개하는 것과 함께, 그 책이 쓰인 사유의 배경을 추적한다. ‘데리다 평전’은 인간에 관한 전기가 아니라 데리다가 쓴 책들의 전기다.

매우 엉뚱하게도 데리다의 취미 가운데 하나는 할리우드에서 만든 갱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그는 ‘대부’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같은 영화에 열광했는데, 어쩌면 마피아는 데리다가 좋아했던 반(反)기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리다가 평생 즐겼던 최고의 취미는 “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간단히 말할 거라고 하면서 보통 ‘두세 시간’을 혼자서 말하는 사람이었으며, 물을 마시기 위해 강의나 세미나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자랑거리였다. 유머를 섞어 말하자면, 그야말로 철저한 음성중심주의자였다.

데리다 자신이 도발적으로 말했듯이 헤겔이나 하이데거의 전기에 성생활을 언급한다고 해서, 철학자의 전기가 곧바로 포르노그래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데리다는 스물여섯 살 무렵, 훗날 아동정신분석가가 된 마르그리트 오쿠튀리에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이후 고등사범학교에서 자신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뒤에 제자가 되었던 열다섯 살 연하의 실비안 아가생스키와 혼외 아들을 낳았다. 이들의 관계는 실비안이 서른여덟 살 때까지 이어졌고, 그녀가 제16대 프랑스 총리가 된 리오넬 조스팽과 결혼하는 1994년에서야 완전히 끝났다. 글쓰기 광이기도 했던 데리다는 실비안과 관계를 종료하기까지 약 1,000통의 편지를 썼다. 전모가 공개되지 않은 편지 가운데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통의 편지는, 그가 공을 들인 철학적 주제 가운데 하나였던 타자론을 떠올리게 한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여, 내가 당신을 ‘내 사랑’이라 부를 때, 내가 부르는 것이 당신인가요, 아니면 ‘내 사랑’인가요? 당신, 내 사랑하는 사람이여,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는 당신이지요? 내가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에게이겠지요? 질문이 잘된 것인지 모르겠네요. 질문이 두렵군요. 하지만 나는 답장이, 어느 날 온다면, 당신으로부터 내게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직 당신만이, 내 사랑하는 사람이여, 오직 당신만이 그것을 알고 있겠지요.”

재미 삼아 ‘한남’과 ‘갓양남’을 비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화제가 불륜이다. 이 화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서양의 유부남은 새로운 여자가 생기면, 아내와 정리를 하고 새 여자에게 간다. 얼마나 산뜻한 처신인가? 반대로 한국 남자들은 결혼은 결혼대로 유지하면서, 새 여자와는 재미만 본다. 아내와 불륜 애인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양쪽에서 꿀을 빤다. 한남은 절대 어른이 될 수 없는 어린애들이야.’ 한나 아렌트를 평생 동안 애인으로 두었던 하이데거나 데리다도 그 훌륭하다는 ‘갓양남’이었다고 역설하려는 것이 아니다. H감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 남자가 서양의 유부남처럼 해도 문제라는 것이 바로 문제다. 현재 H감독은 젊은 여배우에게 빠져, 사랑하는 아내를 버린 가정 파괴범이 되어 있다. 그가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또 어떤 비난을 듣게 되었을까. ‘저것 봐라, 한국 남자들은 아내도 못 버리고, 애인도 못 버리고, 양다리 사이에서 자기 할 것 다한다.’

한국인들은 이런 상황을 모순이나 부조리로 여기지 못한다. 모순과 부조리를 합리화하고 봉합해버리는 마법과 같은 해석이 항시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도기! 이 칼럼의 끄트머리에 ‘조국 사태’를 찍어 바르는 것은 좀 뭣하지만, 조국 사태와 H감독의 사례에 꼭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아직은 과도기야!”라는 비겁한 말이 아니다. 우리를 조선 시대에서 21세기로 이행시켜줄 도약이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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