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잡초 아닌 덩굴팥

입력
2019.08.27 18:00
새팥

선뜻 선뜻 시원해진 바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무성하기만 하던 초록빛이 누그러지는 듯싶습니다. 수목원을 둘러보다 보니 일주일 사이에 많은 비와 높은 기온으로 온 전시원에 잡초가 무성합니다. 잡초란 말은 제가 안 쓰려고 매우 노력하는 단어의 하나입니다. 잡초란 의도하지 않고 난 식물을 말하여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 각각의 식물이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를 안 쓰는 일이 생각보다 참 어렵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잡초로 불리는 많은 식물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지를 알리고자 기획되었던 수목원의 전시회 이름도 ‘잡초전시’였으니까요.

잔디밭에도 의도하지 않은 식물들이 무성했습니다. 개망초, 토끼풀, 매듭풀을 지나 눈길을 잡은 것은 노란 색의 꽃이 피는 콩과의 덩굴식물이었습니다. 새콩, 새팥, 돌콩, 돌팥, 여우팥 등등의, 이름도 모습도 비슷한 식물이 여럿이어서 매번 혼동을 하곤 합니다. 그 가운데 새팥이려니 하고 지나치려다가 약간 다르다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와 같은 식물학자들은 그 식물들을 정확하게 동정(同定ㆍ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정하는 일)하기까지 아주 작은 꽃받침조작, 털의 모양과 심지어는 DNA와 같은 유전적인 정보를 동원하여야 하는 경우가 많아 사진을 찍고 한 부분을 갖고 들어와 살펴보았습니다.

덩굴팥

잠시 연구하던 시절로 돌아가 관찰하고 문헌을 찾아보고 동료들과도 논의하고 보니 새팥과는 꽃이 달린 배열이 다르고, 선형의 꽃받침잎을 가진 좀새팥과도 다른 ‘덩굴팥’이라는 식물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본, 아니 놀랍게도 처음 이름과 함께 인지한 식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라져가는 수많은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식물들을 찾아 오지를 헤매며 만나왔던 저에게는 연구실 입구 바로 옆에서 자라고 있던 덩굴팥이 잡초가 아닌 참으로 귀한 식물이었던 것이지요. 인도 원산이라고 추정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와 살던 식물이고 전통지식을 찾아보니 전남 지방에서는 예팥이라는 이름으로 씨앗을 팥처럼 먹는데, 단맛과 콩의 비린 맛이 있으며 줄기와 잎은 나물, 샐러드, 장아찌로도 먹으며 생약정보도 있는 식용, 약용식물이기도 하더군요.

새팥과 좀새팥의 비교. 국립수목원 제공

오늘의 제 삶도 여전히 진짜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언제나 곁에 있어서 하찮게 지나쳐버리고, 멀리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인가에 매달려 소비하고 있었다고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이즈음 벅차도록 생겨나는 크고 많은 일들에 한참 지쳐 생각이 많았었습니다. 마음을 돌리고 보니, 오늘 이렇게 잠시 시선을 바꾸면 덩굴팥을 알아갈 수 있는 일상이, 함께 들여다보아 주는 동료가, 나이 든 딸에게 여전히 잔소리를 놓지 못하시는 어머니가... 그 모든 일상이 소중하며 감사하다는 것을 또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저와 같은 증상이시라면 하던 일에 갇혀 계시지 마시고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놓고 잠시라도 일상의 여백을 만들어보십시오. 문밖만 나가도 살랑이는 바람에 가을이 실려 있고, 발밑이나 머리 위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들은 여러분에게 진짜 보석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건네줄 것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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