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계 “식민지근대화론에 제대로 반박 못해 ‘반일 종족주의' 등장” 반성

입력
2019.08.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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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사단에 친일 딱지 붙이며 학문적 논의 진척 못해”

“철 지난 이야기를 새로운 것처럼 새삼 꺼내 들고 나와서 다들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를 바라보는 학계의 첫 반응은 ‘당황스러움’이다. 책의 토대가 된 식민지근대화론은 1990년대 본격 등장했다. 그때도 불완전한 통계와 일부의 사례로 전체를 왜곡했다는 비판과 함께 학계로부터 상당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하지 않은 채 좀 더 과격한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 출몰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선 “문제가 된 주장을 좀 더 냉철하게 반박하지 못한 학계의 책임이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식민지근대화론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비판해온 대표적 학자인 허수열 충남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지난 20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때 더 철저하게 따졌어야 했는데,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탄식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 식민지 기간 착취나 수탈을 당했다는 것은 허구이자 신화이며, 외려 그 기간 동안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토대를 닦았다는 이론이다. 1987년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가 세우고,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식민지근대화론을 만들어낸 산실이었다.

경제사 전공이었던 이들의 ‘무기’는 통계와 자료였지만, 한국사학계는 감정적 대응에 치우쳤다. 그나마 ‘과학적 반박’에 나섰던 건 경제사 전공이었던 허 교수 정도였다. 그는 2005년 저서 ‘개발 없는 개발’에서 일제 시기 경제개발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성장의 몫은 대다수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에게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경제사학계에서 ‘이영훈 사단’은 주류였고 반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허 교수는 “뒤를 잇는 연구자를 만들어낼 여건이 조성되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사학계에선 역사 연구를 ‘민족 아니면 친일’로 재단하는 학계의 이분법적 태도가 근본적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해동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도 분명 경청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친일’ 딱지를 붙여서 흑백논리로 끌고 가다 보니 학문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로 진척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2000년대 들어 탈민족주의, 탈근대주의 역사 이론의 부상으로 식민지 시대 생활사, 일상사, 사회문화사 연구가 두드러지면서 경제사에 대한 관심도 더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아예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송규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조선총독부통계연보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사회경제를 분석한 ‘통계로 보는 일제강점기 사회경제사’를 펴냈다. 표면적으론 일제 식민지배 시절 사회경제가 발전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종합적, 심층적으로 보면 통계에 숨겨진 수탈과 차별이 드러난다고 그는 반박했다.

학계에선 ‘이영훈 사단’의 주장이 정치적 이슈나 이념 갈등으로 확장돼 다뤄지는 것을 경계하며, 학문적 차원의 다양한 논쟁의 장이 열려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한국사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식민지 시대에 대한 심화된 연구들이 많이 나왔는데 ‘반일 종족주의’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며 “학술적 평가를 받기 보다는 대중적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도 같은데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신(新)친일파냐 아니냐는 식의 논쟁 보다는, 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주장이 계속 반복되는지 차분히 들여다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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